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29절~ 2장3절
우리들교회 임 집사님의 작은 아들이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다며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여자 친구는 우리들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있지만 아들은 아직 믿음이 없습니다. 아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직장인이고 며느리 감은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 살 학생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일까요?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은 다 이루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으로 주십니다. 짐승은 인격이 없기에 푸른 식물로 주시고, 인간에게는 영적 자손을 위해 생명의 ‘씨’가 있는 것들을 먹게 하십니다.(1:29-30) 그렇게 보시기에 심히 좋아하시며 ‘다 이루니라’(1:31-2:1) 하신 완벽한 세계는 피 흘림이 없는 채식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이 육식문화를 가져오고 약육강식과 환경 파괴가 시작됐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하시고 구속사를 완성하십니다. 모든 환경을 갖추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타락한 인간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다리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다 이루는 삶은 아낌없이 주고 또 주며 기다리는 삶입니다. 주면서도 생색내지 않으며 죽어지는 삶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입니다.
안식하는 삶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입니다. 일곱째 날 모든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시는 하나님입니다.(2:2) 이 안식은 지쳐서 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마치고 기뻐서 쉬는 것입니다. 여섯째 날 인간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으니 인간은 안식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고 그 축복으로 노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의 첫 날은 월요일이 아닌 ‘주일’입니다. 일곱째 날의 안식을 누리기까지 첫날부터 여섯째 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무시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로 부와 성공을 좇는 사람은 실망과 죄책감으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실체를 깨달으며 비현실적 기대를 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안식입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은 거룩한 삶입니다.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셔서 거룩하게 하십니다.(2:3) 복은 무릎 꿇고 기도하고 경배하고 찬양한다는 뜻이고,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에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임 집사님은 아들의 사건을 통해 자신이 혼전임신으로 결혼하여 가족을 힘들게 했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정죄감으로 죽은 듯 살았기에 체중미달과 정서불안으로 힘들었던 아들의 삶이 본인의 결론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임신한 여자 친구도 말씀으로 양육이 잘 되어 스스로 홈페이지에 오픈을 했습니다. 낙태를 생각하는 집사님의 아들에게서 생명을 지키고 싶었다고, 이제 집사님과 함께 가족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 예배의 회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예배를 통해 거룩할 수 없는 우리가 거룩해져갑니다. 말씀으로 나의 굳은 자아가 깨어져서 죄를 회개할 때 죄의 통치를 끊고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을 가지며 고난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