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삼하 12:1~12
책망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간혹 저더러 책망해달라는 목자들도 있지만, 대개는 책망보다는 위로해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단이 다윗을 책망하는데 이런 책망이야말로 다윗을 가장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망을 다 같이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책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망은 믿음의 사람이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매를 맞는 것이 복이기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나단 선지자와 다윗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친히 찾아오신 선물입니다. 통일왕국의 왕에게 죄를 지적하는 것은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지만,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좋은 책망자는 상대의 상황에 맞게 말씀을 풀어주고 해석해주는 지체이고, 현재의 모습보다 앞으로 변화될 상대의 가능성을 보며 책망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듣는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책망자입니까? 정죄하는 책망자입니까?
둘째, 책망의 방법이 있습니다.
책망은 가장 적절한 순간까지 기다려야 하고 민감함으로 해야 합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민감함은 상대방의 말에 표현되지 않은 내용과 침묵, 신음이나 한숨을 듣는 것이고 그 말에 실려 있는 느낌까지도 알아차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민감한 사람으로 훈련되는 것입니다. 기도로, 경청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통해서, 목장에서 묻고 삶의 현장에서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줄 때 민감함은 훈련됩니다. 민감함으로 한다 해도 사람들은 아픔이 되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에 책망하기란 어렵습니다. 나단은 직접 책망하기보다 비유로 깨닫도록 했습니다.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숙한 상황을 예로 들어서 우회적으로 설득시킵니다.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가 자신의 파티에 쓰기 위해 가난한 자의 딸처럼 아끼는 암양새끼를 빼앗았다고 전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윗이 못 알아듣습니다. 은폐하고 있는 죄들이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날 것인데 이 땅에서 드러나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책망하십니까? 민감함을 훈련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셋째, 책망에는 반응이 있습니다.
다윗은 노함으로 반응합니다.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를수록 타인을 평가할 때는 가장 혹독하게 판단함으로써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 본능입니다. 하나님께 진정 용서를 받은 경험이 없기에 남을 함부로 비판하며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유를 듣자마자 부자를 욕하면서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드러냅니다. 다윗의 문제는 밧세바가 아니라 자기애의 문제입니다. 자기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며 자신의 행복과 이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지만, 자기애로 인해 주님과의 첫사랑과 같은 절정의 감정을 밧세바에게서 찾았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권세를 썼습니다. 다윗이 노해서 부자를 정죄하니까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얘기해줍니다. 그 말은 사랑하지 않으면 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책망받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칭찬인지 욕인지도 모르는지, 앙심을 품는지, 꼬아서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옳소이다 하면서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책망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네 주제를 알아라, 네 자리를 알아라.’라고 하시면서 모진 형벌로 책망하십니다.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에게 모든 것을 주셨는데 다윗은 넘치는 은혜 속에서 범죄했습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아의 가정을 파괴한 다윗의 범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한 사람을 죽인 죄의 대가가 너무 혹독합니까? 사랑하시니까 책망도 무섭게 하시는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은 여자 문제를 넘어서는 권세의 문제입니다. 승리의 정점에 올라가니까 다윗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권세를 남용하는 교만함을 보였습니다. 자기애가 교만입니다. 다윗에게 천만 배의 형벌을 주셨지만, 다윗 때문에 인류가 구원될 것이기 때문에 자기애에서 벗어나 모진 형벌에 감사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영육의 모든 관계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책망 잘 받는 모습을 보이고 갈 때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구원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