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앞에서 뛰논다는 것은 악기와 노래와 춤을 동반하는 행동으로서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다윗의 뜨거운 신앙과 미갈의 차가운 신앙, 크게 두 가지를 보겠는데 우선 다윗이 뜨거운 신앙으로 어떻게 뛰놀았는지 세 가지로 보겠습니다. 첫째, 거룩한 기쁨으로 뛰놀았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하나님께 물었지만, 언약궤 때에는 안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배인데 언약궤를 가져오는 엄청난 일에 묻지를 않으니 하나님께서 웃사를 향해 치셨습니다. 거룩한 기쁨은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기쁨이고, 하나님과 다시 가깝게 된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수를 아는 오벧에돔은 다윗이 언약궤를 내놓으라 하자 금세 드리지만,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를 맡게 되고 후손과 소유의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에서 오는 거룩한 기쁨이 있습니까? 둘째, 여호와 앞에서 뛰논다는 것은 헌금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여섯 걸음을 행하매’라는 두렵고 떨림으로 궤를 메고 가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것을 느끼고 한 발자국씩 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타나 보이는 열매는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드디어 인정하셨구나’하는 생각으로 너무 기쁘고 말씀의 궤를 지고 가면서 적용을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즉시 수송아지 일곱, 수양 일곱의 십일조를 넘어서는 완전수의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완전수의 헌금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셋째, 힘을 다하여 회개함으로 뛰놀았습니다.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다는 것은 통일 왕국의 왕이지만 하나님을 영원히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눈물의 회개 표시입니다. 언약궤의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회개가 되고 제사장의 베옷을 입은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인데, 저도 말씀을 보면서 회개하다 보니 저절로 제가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열매를 주셨습니다. 힘을 다하여서 뛰놀고 힘을 다하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눈물로 회개함으로 뛰노는 것이 있습니까? 넷째, 비난을 무릅쓰고 뛰놀았습니다. 다윗과 온 공동체가 기쁨에 참여하고 있는데, 미갈은 다윗을 업신여기고 전혀 동참하지 못하고 영적 축복을 함께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주의, 교권주의가 얼마나 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것을 방해하는지 말해주고 있고 하나님을 기뻐할 때 이런 비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야 합니다. 오늘 간증하신 집사님도 참 유명하신 분인데 무덤에까지 가져가려고 했던 삼 십년 전 이야기를 오픈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분이 되셨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미갈이 업신여기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약궤 옮기기를 마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며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이제 제2의 출애굽을 하면서 미갈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갈 자체를 인정하고 인간적인 집착과 어떻게 해서든 돌이켜보겠다는 것을 내려놓고 그저 사명을 감당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미갈에게는 최고의 선지자 사무엘이 있었고, 최고의 오빠 요나단이 있었고, 예수의 조상인 남편 다윗도 있었는데, 자기에게서 남겨진 부분을 보지 못하고 오직 남편 다윗을 통해서만 자기의 살아있음을 느끼려다 집착이 되어 모두를 힘들게 하다가 사랑을 잃게 되었습니다. 미갈의 문제는 결국 나 중심성이고, 우리는 미갈을 통해 인본주의를 끊어내고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집집마다 미갈이 있는데, 부부가 동침하시길 바라고, 말을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 계속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미갈처럼 되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영광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의 땅끝은 바로 배우자이고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