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내리 사랑]
노창수 목사
요15:12~17
예수님께서 본문 12절과 17절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행함이 있어야 하는 명령이자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이 말씀들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고통 중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일어서라고 주신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인 남편과 죄인인 여자가 사랑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죄인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교회를 이룬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첫째, 주님은 자기를 희생함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기 24시간 전에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런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기에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복음과 십자가를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자기를 내어주고 희생할 때, 그 때 비로소 교회가 진정한 교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둘째, 주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각각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종은 ‘포기한다, yes만 있고 no는 없다,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한다, 죽기까지 복종한다’는 의미가 있고, 친구는 ‘법정에 함께 서 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옆에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십니다. 세상에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다 아시고 각각 사랑하십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서로 격려하며 기도해주는 아날로그 방식인 교회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셋째, 주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택하고 먼저 사랑한 것 같지만,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고, 주님이 나를 택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은 먼저 하는 것이고 즉 솔선수범입니다. 교회공동체에서는 은혜 받은 사람이 제일 먼저 움직여야 됩니다. 나누고 섬기면, 그 은혜가 흘러 나가 우리가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도중에 일어나셔서 손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제자들에게 먼저 섬김의 본을 보이십니다. 저는 부모님 따라 이민 간 세대입니다. 아버지는 명문대 출신인데, 술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시니 술을 드실 때마다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술과 담을 쌓았고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나중에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고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며 조금씩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지금은 편찮으신 아버지를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뵙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크신 사랑을 알았다면,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관계를 치유시키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생산적인 사랑, 열매 맺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영광 받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주님 안에 거하라, 내 말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친밀한 교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날마다 큐티 하면서 말씀에 붙어 있을 때 주께서 공급해주시는 자양분으로 자연스럽게 열매 맺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장에서 마음이 들지 않는 분이 있을 때, 우리들 교회 10년째 나오는데도 신앙이 제자리 걸음인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받쳐주며 섬겨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죽어주셨기에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희생적으로, 개인적으로, 솔선하여 사랑하시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생산적으로 사랑해주셨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배우자를, 자녀를, 부모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들 교회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무장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신앙의 공동체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