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보았다]
요 20:10~18
세월호 사건은 인간의 입으로는 위로 할 수 없지만 부활의 주님이 모두 찾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일곱 귀신 들렸고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만나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내가 주님을 보았다’ 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주님의 시체를 보지 못해서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된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이 친구 삼아 주셨기 때문에 주님만 생각하면 너무나 슬퍼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울고 또 울며 바로 옆에 서 계신데도 예수님인 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울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서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찾는 예수님은 땅의 정신 상태와는 아주 다른 감정과 정신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죽으셔야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제는 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마리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사건이 예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사건인데 울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의외의 환경에서 주님을 보여주십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고 남편이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고 아내가 집을 나가면 슬픈 일이 아니고 육이 무너지고 영이 세워져서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이기 때문에 좋은 일인데, ‘이것이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사건이야?’ 라고 하며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동산지기라고 합니다. 의외의 사람이고 사건이기 때문에, 동산지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동산지기를 예수님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의외의 장소, 의외의 사람에게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셋째, 마리아를 양육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내가 왜 우는 지도 모르면서 주님을 찾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웁니까? 예수님께 기도하며 울부짖으면서 동산지기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무도 하찮은 것 같은 사람, 죽을 것 같은 환경에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싫고 무섭고 그래서 통곡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울고 지금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넷째,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형편없는 마리아를 찾아 오셨듯이 나를 찾아오셔서 이 모습 이대로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도 오늘 주님께서 이름을 불러주시니 여러분들은 살아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마리아야~’라고 불러주시고 양육해 주시기에 신앙의 돌이킴이 되어 부활 후에 기록된 첫 번째 이름이 되었습니다. 울고 있는 그 문제에서 주님께로 시선을 옮기라고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다섯째, 주님의 육신을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불러주어도 아직은 ‘랍오니(선생님)’라고 불렀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이 되어 주님을 만났으면 사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남편 자체가 상급이 되어 버렸습니다.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돈, 남편, 자녀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이 되면 다시 육신을 붙드는 그 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계속 이 세상이 전부이니 이 세상에서 큰 일을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우리들에게는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부활의 주님을 전하면서 가는 것이 가장 큰 사명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도 붙드는 육신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정말 놓지 못하는 육신의 연약함은 무엇인가요?
여섯째,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말씀으로 나에게 역사하신 것을 말씀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것은 아무리 의심이 들어도 믿음의 지체들에게 가서 말해야 합니다. 또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면 오늘도 믿음의 형제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날 우리에게 이르라고 하신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자기의 생각과 세상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늘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주님을 보았다 하기 전에 마리아가 주님의 시체를 보지 못해서 울었고, 의외의 환경에서 주님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았고, 너무 정신 못 차리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양육해 주셨습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그래도 안되니까 ‘마리아야~’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름을 불러 주셨더니 돌이켰습니다. 그러면서도 육신을 내려 놓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사명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