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십자가, 찌라도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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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17~18 / 다니엘 9:16~19
#65279;#65279;김재현 원장(한국 고등신학연구원)
우리에게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의무이지만 엄청난 특권입니다. 중세 유럽의 도시를 다니면서 부러움과 신앙의 유산을 보면서 한국 기독교의 가치와 신앙 선배들의 유산을 정리해서 전 세계와 나누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목사님 같은 위대한 신앙의 업적을 정리하는 한국 기독교의 “집현전”을 세우기 원했고, 만주지역에서 시작하여 소록도에 이르기까지 신앙선배들의 발자취와 숨소리를 정리하는 영적인 “대동여지도”를 그려 보고자 했습니다. 거시적인 한반도라는 주제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찌라도”의 단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 한국 교회가 너무 부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하나님조차 들어오실 공간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없는 시절에 가진 것이 없는 나를 선택하신 한 마디 말씀에 하나님이 주신 존재가치를 깨닫고 얼마나 기뻐 했습니까? 한국교회 전체를 볼 때 Being의 개념보다 Having의 개념에 빠져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으되 하나님을 소유한지 못한 자, 십자가를 소유하지 못한 자, 하나님의 눈물의 마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둘째,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본질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리고 십자가가 버거운 것이 되었습니다.
시대에 대한 의와 정의와 공의를 말하는 것조차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것과 수정해야 할 것이 많고 우리의 부함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본질,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기독교는 개인의 희망이고 한국의 희망입니다. 기독교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희망입니다.
전남 소록도에는 나병환자라고 부르던 한센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코가 문드러지고 눈이 문드러지고 어느 날 손이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외모로 본다면 정말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일년에 50명 정도가 돌아가시는데 죽음을 맞고 24시간안에 화장까지 다 끝마칩니다. 새벽4시 반에 예배와 5시 입관예배, 8시 장례예배, 9시 반에 화장대의 환송예배를 드리는데 하버드대학 박사출신인 저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6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를 통해 지난 100년의 한국민족의 아픔과 눈물을 찾아 보았습니다. 1945년 해방의 와중에 소록도의 지도자 84명이 비참하게 죽창에 찔리고 소나무 기름에 튀겨져 생매장을 당했습니다. 아무도 찾아 줄 것 같지 않았던 소록도에 고통 당하는 십자가가 있었고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소록도에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 가장 강력한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소록도에는 “찌라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할 찌라도 /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을 찌라도 /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을 찌라도 / 밭에 먹을 것이 없을 찌라도 / 우리의 양이 없을 찌라도 / 외양간의 소가 없을 찌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소록도에는 감사와 기도의 역사가 있습니다. 70~80명의 소록도 시작 장애인들이 모여 대나무 작대기를 두드리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셨습니다. 손이 없고 앞을 볼 수 없을 찌라도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찌라도의 기적이고 찌라도의 십자가입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내려감의 찌라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포기하고, 내려가고, 엎드리는 찌라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손불(손에 성령의 불)이라는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은 한번 시작한 한센인의 사역을 끝까지 마치는 기도를 하고 사셨던 분입니다. 여섯 명의 자녀 중에 첫째, 둘째가 복음을 끝까지 지키다 총에 맞고 두들겨 맞아 순교했지만 용서만 가지고 되겠느냐며 아들을 삼은 진정 용사의 찌라도 였습니다. 전쟁의 피난길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한센인들을 위해 배에서 내리셨던 목사님의 인생을 결정 짓는 순간의 찌라도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진정 살기 원하고 부흥하기 원한다면 십자가 밑에서 죽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변화하게 만들고 십자가를 따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부터 내가 설교한대로 살고 큐티 한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죽는 자세로 십자가에 엎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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