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엘의 축복
( 룻4:1∼17 )
구속사는 세속사와 대조되는 용어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끌어 온 성경의 역사입니다. 룻기는 구속사적으로, 고엘이 무엇이며 고엘의 역할과 축복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책입니다. 고엘이란 히브리어로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즉 대신 갚아주는 자, 구속주라는 뜻인데, 예수님은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릴 대신해서 고엘로 이 땅에 오셔서 대신 갚아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회복됐고,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다시 상속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신 다윗 가문인데, 나오미, 룻, 보아스라는 세 사람 때문에 끊길뻔 했던 가문이 이어지고, 보아스-오벳-이새-다윗 이렇게 4대만에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가문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것을 고엘의 축복이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나오미가 어떻게 하였는가를 살펴봅시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은 유다 베들레헴에 살다가 흉년이 들자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찬송과 하나님의 떡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죄악과 육신의 정욕이 가득한 땅 모압으로 이주를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세 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현재 상황인데 거지 같이 찌질한 인생이며,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기가 어려운 수치인데, 나오미가 다윗 왕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고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오미가 모압으로부터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수치를 무릅쓰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고엘의 축복과 은총이 시작 되고 가정이 회복됩니다.
둘째, 룻의 결단과 헌신은 더 놀랍습니다.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고 평소 자주 오지 않던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는 ‘마침’ 그 때에 이삭을 줍고 있는 룻를 보게 되고 잘 해주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발걸음을 옮긴 그 때부터 룻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룻기서’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말씀은 ‘언약 안에서 맺은 인간관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끊지 않겠다’라는 각오입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 회사의 관계, 사회에서의 관계도 주님이 맺어주신 관계라면, ‘죽어도 끊지 않겠다는 결단’ 이것이 룻의 결단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고엘의 축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룻에게 오늘 밤 우리의 고엘 보아스에게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기가 막힐 일이지만, 그 때 룻은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룻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며 대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견디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주님이 하라고 할 때, 감당하는 룻이 되면 고엘의 축복이 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의 아침, 영광스런 축복을 소망하면서 십자가의 삶, 십자가의 가시 면류관은 거절합니다. 주님께서 묶어 주신 관계를 끊지 않고, 힘들지만 감당 할 때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됐던 그런 고엘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셋째, 보아스의 헌신과 결단입니다. 고엘의 역할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빛과 소금입니다. 고엘로서 보아스보다 우선 순위가 있는 한사람은 자신의 기업에 손해를 볼까봐 고엘의 책임을 거절하니, 보아스가 고엘의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고엘을 요구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 시대는 책임을 지는 일을 회피하는 시대이지만, 보아스는 내가 그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결국 4대만에 다윗 왕조를 여는 위대한 가문을 만든 겁니다. 그리스도의 고엘의 책임 후에는 그리스도의 축복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선교하고, 봉사하고, 가정을 세우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 치유해 주고, 만져주는 그런 고엘의 은총이 있고, 고엘의 섬김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