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창세기 17:1- 14)
영적인 나태에 빠지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시큰둥 하고 우울해지곤 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육적후사인 이스마엘에 빠져서 13년 동안 언약을 잃어버리고 영적 나태에 빠져 예배를 상실한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주십니다. 오늘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제목으로 3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의 불완전함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라.(1절-2절)
여호아께서 아브람이 99세 때 나타나셔서 ‘이제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99세라는 나이와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완전함 앞에서 회개할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1) 99살이 된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람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인데,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후사에 대하여 응답하지 않자, 그 답답함과 이를 넘어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의 마음을 아시고 찾아오셔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되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분명히 네 몸에서 후사가 날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1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응답이 현실화 되지 않았습니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계산법은 다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지만, 구속사를 믿는 성도는 카이로스의 때를 믿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사래는 10년 동안이나 기약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아브람과 사래는 인내심을 잃고 맙니다. 하나님께 묻거나 인도받지 않고, 하갈을 들여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얻은 자녀가 아니므로 영적후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이스마엘 기르는 재미에 빠져서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부르거나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3년이 지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2)전능하신, 엘샤다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일깨워주신 속성은 자신이 전능하다는 것입니다.
3)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너의 불완전함을 보고하고 엎드려 회개하라
아브람은 13년 간이나 이스마엘에 푹 빠져서 언약을 잃어버리고 할 말 없는 인생이 된 자신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엎드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수 있는 회개의 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 인간이 완전해 지는 것은 나의 부족과 불완전함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 하지 않는 심령에게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이름을 바꿔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4절-8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아버지에서 모든 나라의 아버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네 인생의 본질이 가족우상에 빠져서 그저 잘 먹고 잘 사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사는 그리스도인 본연의 사명을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진짜 사람을 살려내는 열국의 아비 같은 사람은 말씀이 들려 자신의 죄를 보고, 예배가 회복된 사람입니다.
셋째, 마음의 할례를 요구하시는 하나님.(9절-14절)
창세기 15장에서는 하나님 혼자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심으로 계약을 맺으셨지만,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몸에 할례를 행함으로서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계약의 표를 삼기를 원하시는 좀 더 강력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집에 동거하는 모든 이방인도 할례를 받으면 언약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이 개념이 세례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마음의 할례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진정한 할례란 육신을 넘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롬 2:28-29; 4:11)
아브라함이 받아야 할 마음의 할례란, 젊고 예쁜 하갈에게 들어가고 싶은 맘의 살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마엘 붙잡고 재미있게 살고 싶고, 열국의 아버지의 사명은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의 할례 즉 가치관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끊어내지 않으면 절대로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카이로스의 때를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할례는 중심이 상하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가 있어야 건강해집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이스마엘을 내려 놓고 내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고 회개해야 온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줄 것만 있는 인생, 사명 따라 왔다가 사명따라 가는 인생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올라오는 우리 안의 버려야 할 이방가치관과 유혹들을 과감히 잘라 내버리는 할례를 통해서 공동체 가운데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