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길]
사무엘상 20:1 ~ 42
우리는 항상 좋은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다윗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했지만 도망자가 되어서 자기의 진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한 다윗의 결단을 따라가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상대방의 결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의중을 확인해야 합니다. 잠시 황홀경에 빠진 사울이 다윗을 재임용했지만 계속 몸 담고 있어야 하는지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나단은 절대 아버지가 안 죽일 거라고 하지만 다윗은 베들레헴으로 간 것처럼 전하여 사울이 좋게 받아들이는지 시험하고자 합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에서 성령받으니 혹시 변하지 않았을까 해서 또 믿어보고 싶은 것이지만,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다윗은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사무엘도 미갈도 안 되고 요나단은 계속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객관적으로 사울이 정말 나를 도울 건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윗이 무서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역할에 순종하며 질서를 지키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구원의 사랑으로 함께 한 요나단과 다윗이 마지막까지 극단적 선택을 안 한 것입니다. 가장 좋은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둘째, 언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헤세드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요나단은 식구를 객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므비보셋을 살린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대적을 하나님이 치실 줄 믿는다고 했는데 아버지도 그 대적이 포함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것인데, 요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을 보여주고 다윗에게 인자를 베풀라는 약속을 맹세하게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죽어주는 사랑으로 다윗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고, 사울 가문은 다 죽고 절름발이 므비보셋만 남은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인데 거기서 사도 바울이 나옵니다. 요나단은 영원한 약속에 근거한 자기 희생의 사랑을 했습니다. 내 사랑은 언약에 근거한 자기 희생을 사랑입니까, 이기적 사랑입니까?
셋째, 의도가 드러나기까지 구체적으로 인도받아야 합니다.
요나단과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사울의 의도를 알아야 하는데, 악인의 의도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방법은 너무도 치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떠나거나 옮겨야 될 분명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사단은 집요하게 이새의 아들을 대적하므로, 믿음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야 든든히 서 갑니다. 다윗이 없는 것을 알고 네 어미가 능욕을 당해야 알겠느냐며 호통치는 사울에게 요나단도 다윗이 죽을 죄가 있느냐고 했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걸 보고 아버지의 결심을 알게 됩니다. 어떤 것도 다윗은 믿으면 안 되며 오직 구원을 위해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다윗은 생명이 경각에 달렸으니 날마다 하나님 음성 듣고 인도받는 것입니다. 다윗의 영성의 최고 스승은 사울인데, 나를 위해 수고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며, 창조주의 뜻을 알게 되니 감사한 것입니다.
넷째, 가장 좋은 길은 떠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처 없이 떠나는 다윗과 요나단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는데, 언약으로 맺어진 말씀에 근거한 사랑은 어디에서도 유효하며,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사랑으로 이어져 몇 천년 지나서 예수님과 바울의 사랑으로 보여진 언약의 사랑입니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영원토록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고하는 남편과 아들의 고난 속에서도 언약의 말씀으로 감사와 자유함을 누리는 집사님처럼, 변해야 할 것은 말씀 듣는 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