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1~35
예배 중독자지만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울은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고 죄책감을 심어주고 완고한 율법주의자로 아들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사울은 23년 만에 나타난 사무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오늘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해주고 있는데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순종을 하려면 말씀이 살아서 인격적으로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은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인격적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를 하신 예수님처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절대 권력을 가지고는 순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을 역대기를 통해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을 보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명예도 권력도 재물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서 인격적으로 들려야, 순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인생에서 원수를 진멸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순종하려면 안과 밖의 원수를 진멸해야 되는데,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기습적으로 공격하며 구원을 방해한 아말렉을 하나님은 ‘반드시 멸하리라’ 말씀을 하셨는데, 사울에게 미션을 주시며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하시는데 이 뜻은 아무것도 대가를 얻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전쟁 때 여리고와 아이에서의 방식이 달랐던 것처럼 그때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만, 여리고에서는 아무것도 안 받았더니 큰 성이 무너졌던 것처럼 우리들교회 부흥의 비결은 자원봉사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봉사들이 되어가는 것 때문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오늘 간증하신 집사님처럼 상상 못할 기적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그런데 가장 중요한 원수를 진멸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연합하여 좋은 것은 진멸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원수가 초토화 되는 것입니다. 암나귀가 전공인 사울은 좋은 소나 양을 보면 가슴이 뛰는데다 인정 못 받다가 강대국의 왕 아각을 잡았으니 끌고 와서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잊어버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 전쟁을 승리했지만, 말씀이 인격적으로 들리지 않아 명대로 전쟁을 했다는 변명만 하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말씀은 실천하지 않고 내 속의 사단은 모셔두고 있으니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고 계속 말씀 하시지만 끝까지 안 듣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이유는 듣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A leader is a reader’,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② 사울은 자신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것인데, 자신을 위해 승전비를 세운 다음에 예배를 드리러 길갈로 간 정말 교만한 사울입니다. ③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무엘에게 변명하다가 여호와께서 자신을 버렸다는 말을 듣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런 것이라 고백하며 돌아서는 사무엘을 붙잡고 자신의 체면을 살려줄 것을 애원하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아각을 찍어 쪼개고 돌아간 후부터 사울은 성령이 없어졌고, 악신이 들어가고, 그렇게 살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역대상에 사울의 죄목은 ‘여호와께 묻지 않아 죽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만난 북한의 할아버지는 탈북 권유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눈물흘리며 매 맞고 굶으며 이 땅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그냥 남으셨고 결국 매 맞아 죽으셨다고 합니다.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지만, 오늘 그 자리에 있으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