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였을지라도]
사무엘상 13:1-23
사울은 외모도 준수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왕위에 오른 직후 만 일 년 햇수로 2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왜 버림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신분과 분수를 망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망각해버린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사울의 실수를 여러 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강대국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햇수로 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상비군을 모집했습니다. 보기에 훌륭했던 사울의 이 일이 구속사적으로 불순종의 이유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칠 명분만 기다리던 블레셋은 건드려주니 쳐 들어와 벧아웬의 동쪽 믹마스에 진을 치게 됩니다. 이럴 때 해석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벧아웬은 우상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하도 섬기니 그곳에 블레셋이 우상을 끊어주기 위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와도 나의 악을 직면하고 내가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뢰하면 그것이 블레셋을 대적하는 길입니다. . 모든 전쟁은 영적 전쟁이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묻고 나가야 하는데 사울이 이것은 안하고 자기가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묻지 않으니
둘째, 월권행위를 합니다.
백성은 흩어져 가는데 블레셋은 믹마스에 모이는 큰일이 생깁니다. 게다가 오겠다는 사무엘은 일주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사울은 블레셋이 쳐들어올까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번제를 드리는데 이것은 어마어마한 범죄입니다. 사무엘의 말을 듣는 것이 예배인데 무섭게 예배에 집착을 하며 형식적인 예배에 목숨을 겁니다. 급박한 경우가 왔을 때, 회개하고 약속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가 살고자 하기에 실수를 합니다. 이렇게 월권행위를 하게 되면
셋째, 변명이 나옵니다.
사울은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번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실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물어보는 시험을 주신 것이고, 신뢰의 답을 기다리셨습니다. 적용은 실제 생활에 들어가 현실에 부딪치면 너무 힘듭니다. 지도자는 끝까지 자기 분수를 벗어나면 안되고 한번 결정하면 거기에 '부득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화평과 온유와 인내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오죽하면 그랬겠어 하는 월권은 언제 예배를 드리는가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사울은 예배에 미친 사람입니다. 영적 성숙의 바로미터는 믿음의 겸손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의 대표인 사울은 무엇을 순종해야 할지 몰랐기에 윗 질서인 사무엘을, 사무엘의 윗 질서인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 아닌 사람의 헌신을 받지 않으십니다.
넷째, 그럼에도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바르게 즉 방법이 옳아야 하고, 영적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된 지 만 일 년 햇수로 이년 째 되는 때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은 38년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사울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아들이 있고 세계적인 선지자가 있는데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을 보면서 회개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꾼이 되었어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했을지라도 회개하고 타이밍을 기다리며 월권하지 않는 겸손한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