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80;부리는 기도의 응답]
삼상 9:1~14
교회를 다니면서 공부를 잘 하던 고3 학생이 S대가 간절한 목표였기 때문에 교회를 포기하고 족집게 과외를 해서 S대에 합격을 했지만 불혹의 나이를 넘었어도 교회를 나오지 않고 교회를 비판하는 자로 변했습니다. S대에 붙은 것이 기도의 응답일까요? 세상 왕을 구하는 떼부리는 기도입니다.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분노함으로 주시는 응답입니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준수하고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키가 큰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달라고 부르짖었지만 사울의 등장은 분노함으로 주시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선택의 왕이고 사무엘 선지자보다 좋다고 구한 세상 왕이 사울입니다. 레위인 대신 첩이 죽은 사건으로 모든 이스라엘 지파는 1,2,3차 전쟁을 통해 림몬바위에 숨은 600명을 제외하고 베냐민 족속을 멸절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도 하나님이 세우신 지파이기에 이스라엘의 연합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족속의 400명의 처녀를 멸절 되어가는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같은 동족에게 전멸당한 베냐민 족속은 윤간을 한 가해자이고 전쟁을 일으킨 족속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한이 크기 때문에 회개 할 줄 모릅니다. 겸손을 가장한 자기들을 위한 왕, 비극과 실패의 사울 왕을 백성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복수처럼 보이지만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집 안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 잔재가 남아서 내 자녀가 사울처럼 왕이 된 후에 나라를 말아 먹고 기업을 말아 먹습니다. 떼부리는 기도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그들이 원하는 온갖 준수함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외적으로 보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단번에 좋아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초대 왕으로 주신 것은 언약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최선입니다. 사울은 외모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긴 여행을 하던 중에 오히려 걱정하는 아버지를 배려하는 효성이 있었고 좋은 충복의 관계인 사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는 예의를 갖추고 그것을 직접 실천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잘 생기고 키가 크고 배려가 있고 효심이 많으며 책임감과 예의가 있으며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찌 왕이 될 수 있는가?” 하며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한이 많은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 까지 겸손으로 자기를 가장하기 때문에 왕이 되자 마자 어머니의 한을 푸는 사울처럼 분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높은 자리의 환경에 올라가면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원수처럼 지내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하는 왕을 그렇게 무시하는 사람으로 세웁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품이 믿음과 대결 할 수 없습니다. 진짜 회개한 신앙이 아니면 한을 갚고 원수를 갚습니다. 분별하는 믿음이 최고이고 성경을 구속사대로 읽어 가는 것은 무서운 지혜입니다.
셋째,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실로가 훼파되어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었지만 사무엘은 한결같이 예배를 집전하였고 이런 사무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사무엘을 존경하지만 백성들은 왕을 구합니다. 백성들이 배척을 해도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끝까지 사랑하시고 사울이 이런 사무엘을 만나는 것은 이스라엘의 축복이고 떼를 부려도 이런 스승이 있기에 이스라엘을 구원 하십니다. 사울보다 언약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사울의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늘 회개입니다. 회개를 해야 말씀이 보이고 구속사가 보입니다. 사람을 가슴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이 앞서고 잘 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 준수한 세상 왕이 승승장구하면 진짜 왕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끝까지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한 사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구원해 가듯이 떼부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