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옮겨 놓으라]
이태근 목사
요한복음 11:39-44
요한복음에는 ①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②신하의 아들을 살리시고 ③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④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⑤물 위를 걸으시고 ⑥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게 하시고 ⑦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일곱 가지 기적과 “나는 ①생명의 떡이며 ②세상의 빛이고 ③양의 문이며 ④선한 목자이고 ⑤부활이요 생명이요 ⑥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⑦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나의 가지다”라는 주님의 일곱 가지 선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셨지만, 많은 무리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에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떠났습니다. 매 주일 간증으로 표적을 보이시고 차례대로 말씀까지 해주시는데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돌을 옮겨야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마르다처럼 공동체에서 양육과 말씀과 나눔을 통해 주님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도 하며 예수가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지만, 정작 돌문을 옮겨야 할 그 때 우리는 냄새가 나서 옮기지 못한다고 주저합니다. 돌을 옮겨야 보여주실 수 있는데 저는 아버지의 영혼구원의 애통함을 가지고 예수 전하는 돌을 옮기는 적용 없이 그저 ‘아버지께서 언젠가는 예수 믿으시겠지’하는 표적만을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냄새가 난다며 옮기기 주저하는 돌은 무엇입니까?
둘째, 둘러선 무리를 위함입니다.
오늘 나사로가 죽은 것도, 나사로에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난 것도 모두 둘러선 무리 가운데 있는 나를 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꼭 들어달라고,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시고 그저 당신의 말을 들어주심에 감사하다고, 둘러선 무리를 위함으로 기도하셨습니다. 5년 전 부활주일에 적용을 위한 적용으로 아버지를 전도했는데 지난 5년동안 말씀과 나눔으로 아버지가 많이 변하셨습니다. 제가 늘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며 무시하고 회피했던 아버지는 바로 저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기 위해 제가 옮겨야할 돌이었던 것입니다.
셋째, 동인 것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 동인 것을 풀어준다는 것은 말씀을 통한 양육입니다. 저는 아버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술은 계속 드시되 예배만 빠지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설에 온 가족이 모인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며 믿지 않는 사위들에게 말씀을 꼭 들어야 한다며 전도 아닌 전도 하시는 모습을 보며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늘 무덤 밖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싫다고만 했지 제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동인 것을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구원받은 것을 다행으로 알고 그냥 앞으로도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내 옆에 힘든 사람이 ‘큰 돌’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옮기지 못하는 ‘큰 돌’은 나의 굳은 가치관,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 고집, 아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체 썩는 동굴에서 수족을 동인 채 걸어 나오는 사람의 수건을 풀어보니 바로 제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병들고,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고 있는 저를 향해 오늘 주님이 주시는 위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돌문을 옮기라고 할 때 즉, 말씀으로 옮기라고 할 때 옮겨야 되지 아무 때나 옮기면 안 됩니다. 돌문을 옮기면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다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십니다. 돌문을 옮기는 적용을 통해 수족과 얼굴에 동여 매인 것을 풀어내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옮기지 못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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