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송]
룻기 4:11 ~ 22
'찬송하다'는 입술로 찬송하는 것을 넘어서 여호와를 기뻐하고, 자랑하고, 삶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룻기에서 감사의 선택으로 충성과 최고의 만남을 갖게 되고 배려하고 안식하며 책임지는 사랑으로 성취를 위해 쉬지 않고 나아갈 때 기업 무르기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여호와만이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왜 여호와는 찬송의 대상이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증인 공동체의 축복이 있습니다.
증인 공동체가 축복한 것이 여호와께서 찬송 받으실 일인데 (1) 증인 공동체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보아스가 남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룻과의 결혼 적용을 하니 그 일에 증인이 되겠다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라헬과 레아같이 유명하게 되도록 축복해 주고 있습니다. 날마다 보아스처럼 우리의 죄와 수치를 드러내고 고백하는 공동체가 증인 공동체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야 가능합니다. 증인 공동체는 찬송의 복, 신령한 복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복을 나누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2) 앞선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 공동체에서 나누다 보면 똑같은 고난을 앞서 당한 모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수치를 무릅썼던 다말에게서 예수님이 오신 것처럼 룻이 발치 이불 들고 들어가 보아스와 결혼하려 했던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희망없는 이스라엘에 룻과 보아스의 진실된 나눔과 선행으로 솔직한 나눔의 증인 공동체가 생겼듯이 우리들교회로 인해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3) 내 자녀 남의 자녀를 구별하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진심으로 축복할지라도 자녀까지 축복하기는 쉽지 않은데, 증인 공동체는 오직 믿음으로 질투 없는 축복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축복하고 칭찬할 수 있는 진정한 증인 공동체와의 만남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축복이 따라옵니다.
룻과 보아스 부부는 아이를 낳으려고 동침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동침한 것이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을 때 여호와께서 잉태케 해주셨습니다. 최소한의 노력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주신 것인데, 우리에게는 그 최소한의 노력이 너무 대단해 보여서 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식구 중 한 사람을 진짜 영적 자녀로 낳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며, 여호와의 축복 하심이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셋째, 후손의 축복을 여호와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유명하게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사랑받는 자’, 이새는 ‘주의 선물’, 예수는 ‘죄에서 구원할 자’인데, 이런 사람들이 룻의 가문에서 탄생이 됩니다. 오벳은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 서로에게 영적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자녀이며,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예수 씨입니다. 이처럼 영적 자녀를 위해서 살라는 것이 성경의 주제이고 룻기의 주제입니다. 내 자녀가 유명하게 되는 일이 없어도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가장 감사한 인생입니다. 영적 자녀가 최고이고, 예수 믿는 것이 최고입니다.
넷째, 혈통과 육정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계보가 시작됩니다.
룻기의 계보는 다말과 유다의 동침으로 태어난 베레스부터 시작하여 온갖 불의하고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육정, 혈통,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로 이루어진 이 족보는 룻과 보아스로 연결되어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계보가 수치스러울지라도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증인들의 공동체가 있으므로 고난 중에도 여호와를 찬송함이 끊이지 않는 우리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