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업]
룻 4:1~10
기업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땅을 사고 팔지라도 희년에는 원래의 주인에게 땅을 돌려 주어야 합니다. 땅을 판 사람도 다시 살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땅을 되 사주는 사람이 기업 무르는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는 사람인데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지만 헤세드의 자비와 인내와 긍휼로 주신 영원한 기업을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혼의 목적도 기업 무르기 입니다.
첫째,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결혼을 합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르기를 위해 결혼 하기로 적용했지만 절차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1순위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는 빈 마음으로 초조해 하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말씀을 듣고 적용거리가 나오고 적용을 하면 말씀이 깨달아지고 자유함과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기업 무르는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창기였던 어머니 밑에서 차별의 문제를 안고 태어났지만 믿음으로 그 문제를 뛰어 넘어 장로를 초청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율법대로 치밀하게 최선을 다하지만 기업 무르기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절차와 법도를 지켜 나갑니다. 결혼의 목적은 기업 무르기이고 구원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전도, 구원이 기업 무르기 입니다.
둘째, 기업을 무르는 것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룻과 보아스는 예수님의 계보에 올랐지만 엘리멜렉의 제1순위인 “아무여”는 이름을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기업 무르기가 율법이기 때문에 자기의 법적인 의무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건성으로 무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생일대의 축복인 룻과의 결혼을 축복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들교회는 목장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교회인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줄을 모르고 “아무여”처럼 건성으로 대답하고 앉아서 졸고 있으면 안 됩니다. 기업 무르기는 구원입니다. 믿음의 일과 믿음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셋째, 기업 무르기는 희생이 따릅니다.
기업을 무르는 사람에게는 권리뿐만 아니라 책임도 따릅니다. 보아스는 “아무여”에게 땅만 사는 것이 아니라 룻과 결혼을 하고 끊어진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줄 책임이 있다고 지혜롭게 일깨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1순위자인 “아무여”는 이기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기업 무르기는 이타적인 것입니다.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한 사람에게는 축복의 기회, 한 사람에게는 저주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기 때문에 유익이 없고 손해를 보고 초라해 보이는 기업을 선택했고 룻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보아스는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산 것 같은 적용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믿음으로 신 결혼을 하는 것이 기업 무르기 입니다. 휴가를 내어서 청소년 수련회를 가는 것이 아깝고 목장에서 밥하고 시간 내는 것이 힘들지만 그 축복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갈 줄 믿습니다. 이타적인 삶을 산 그대로 하나님이 자녀를 키워주십니다.
넷째, 기업 무르기는 증인 앞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증인들에게 모든 손해를 감수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모압여인 룻을 언급했습니다. 수치를 감추지 않고 모압여인과 결혼하는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고 선포를 합니다. 이것이 기업 무르는 자의 태도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해 타산에 따라 미련 없이 팽개치는 “아무여”같은 친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사람 룻에 의해 수 천대가 축복을 받듯이 오늘 나의 적용에 따라 수 천대가 복을 받고 이름없는 그 한 사람 때문에 자손들이 대대손손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모압여인과 결혼하고 나는 이렇게 할 것이라고 증인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우리들교회의 오픈입니다. 예수를 믿고 기업 무르기를 위해 사람을 앞에 놓고 솔직하게 나의 수치를 오픈 하고 선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기업 무르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