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룻 1:6-14
“대선을 앞두고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가 우리의 화두인데, 여러분들은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우리는 일생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오늘 이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말씀이 들리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찬송의 떡집에서도 안 들리던 말씀이 영적으로 멸시 받는 모압 땅에서 들립니다. 나오미는 즐거움과 희락과 낙천적인 성품으로 고난을 넘기면서 남편과 아들 둘이 죽기까지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방문)하셨다는 소식이 들렸고 하나님 총회에도 못 들어가는 모압 땅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처음으로 정신이 들었습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고 회개는 U턴을 의미하는데,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상축복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 축복은 도리어 저주이지만, 흉년으로 하나님의 소문이 들렸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고통은 귀 먹은 사람의 마이크입니다.
둘째,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나오미는 찬송과 말씀의 떡집으로 돌아가면서 며느리들에게는 같이 가지 말라고 합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믿고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놓고 천국을 확신하지만,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는 십자가의 길이고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자신을 치셨고, 죄인이기에 자부들에게 객관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이 길이 좋은 길이지만 가기 어려운 길이니 너희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부들의 재생의 길을 열어주고 인격적인 접근을 통해 매력적인 시어머니의 역할로 돌아온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아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냉정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배려입니다.
한국교회의 여성 목사의 위치가 어떤 지를 알기에 남편도 없는 나오미의 심정이 저의 목회 길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굳세게 만류한 것처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없이는 저를 따라 올 수 없고 와서도 안 되는 길이기에 10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과 함께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립 예배 축사의 말씀처럼 부흥시켜 주셨고 10년 동안 이렇게 추수를 하게 하신 것은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자유의지로 선택을 하라 하셨는데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셋째,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우리가 합니다.
선택은 두 길이 있는데, 은혜의 길이 있고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자부가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따르겠다고 했지만,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남았기 때문에 룻의 이름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조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만세 전부터 예정된 것이지만 믿음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다윗을 미워하고 비참한 멸망의 길을 선택한 사울과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고 저주의 길을 선택한 유다, 은혜의 길을 버린 오르바도 모두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갈 때 면류관을 얻습니다. 언제나 생명의 선택을 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에게 같이 가야 한다고 편협하게 강요하지 않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었으며, 객관적으로 힘든 십자가의 길을 같이 갈 수 있는 자유의지를 촉구 했습니다. 늘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선택을 할까?’ 생각할 때 말씀이 들려야 하며, 사소한 적용을 잘 하는 사람이 큰 선택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오늘 선택한 길이 생명의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