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6-21
찰스 허친스 가브리엘은 1차 대전 징집명령을 받고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저 영원한 집에서 만나요”라며 눈물흘리며 인사하는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기차 편에서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라며 시작하는 찬송가 544장을 작사, 작곡했습니다. 시간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예수님께 속한 것인데,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미워하고 방탕하고 시기 질투하며 염려와 근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할 때 당황하지 않고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교회 공동체가 절대적입니다.
애굽과 두로와 같은 이 세상은 사람을 두렵게 하지만,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윗의 뿌리요 새벽 별이신 주님이 교회를 위해서 계속 말씀을 하십니다. 다 망하여도 이스라엘에게는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는데, 파수꾼은 나팔을 불고 외치기 위해 망을 봐야 하고 멀리 봐야 하고 기다려야 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들어주면서 자기 악을 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성공복음에 목말라 하지만,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공동체가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것이 천국을 누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둘째, 끝까지 오라고 초청을 하십니다.
마지막에 초대 받은 자는 곧 말씀이 들리고 목마르고 원하는 자라 하십니다. 주님과 교회가 하나가 되고,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1900번 이상 ‘오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주의 말씀을 듣고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죄와 고난 속에 말씀이 들리는 환경이 최고의 축복이며, 죄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목이 말라 생명수를 마십니다. 다섯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라는 말씀을 들은 뒤 공동체를 향해 부끄러움 없이 자기 삶을 오픈하기 시작했고 사마리아가 다 전도되었는데, 택하신 자는 세상 삶에 곤고함이 있고 세상의 물은 언제나 목마르지만 값 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면 단번에 갈증이 해소됩니다. 당장의 육신의 갈증으로 아직도 놓지 못하는 물동이들이 있습니까? 주님은 은혜를 주시려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셋째,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아야 합니다.
뉴에이지 사상과 성공복음은 피조물이 신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며 자기 악과 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이단과 자유주의 신학이란 이름으로 말씀을 변질시키는데, 예언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준비 없이 종말과 심판을 맞게 됩니다. 십자가 구속의 원리로 성령님의 편집 순서대로 가감하지 말고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계시록은 재앙의 얘기가 아니라 복을 받으라는 책인데, 아직도 두려운 것이 있는 이유는 천국시민으로 합당하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주안에서 죽는 자, 두루마기를 빠는 자, 부활에 참예하는 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는데, 하늘의 복은 싫고 이 땅의 복만 좋으면 여기서 말한 재앙이 너한테 다 임한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계시록의 결론은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아라’는 것인데,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신다 해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