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 자]
계22:13-15
움직일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복인데, 우리는 늘 비교를 하며 감사하지 못하고 나의 수고가 헛된 것 같고 이 세상이 다 인 것 같아 자꾸 낙심하고 실망하고, 또 무엇인가 이룬 것 같으면 우쭐하고 교만합니다. 그래서 계시록 마지막에서 복 있는 자가 누군지 다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 주님만이 시작과 끝이란 것을 아는 자입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 사역에 함께 하시고 십자가에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동안 사단의 세력들이 힘을 얻어 주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사건이 있을 것이지만, 알파 되시는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이 속히 오셔야 끝내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복 있는 자입니다. 잔느 귀용은 알파와 오메가는 내면의 길이 작동하는 원리이며 주님이 내 삶의 시작이고 끝이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내적인 삶이 완성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사건도 주님이 시작하신 일이란 것을 믿고 주님이 끝내시길 기도하셔야 합니다.
둘째,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두루마기는 속이 누추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겉옷인데 그 겉을 빨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교만해서 자기 더러움을 모르는데,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으니 복 중의 복은 자기 더러움을 아는 겁니다. 더러워진 두루마기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빨아야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이 다가와서 인생의 더러움을 내어놓고 고백하는 것이며, 바울이 자신을 배설물이라 한 것처럼 배설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잔느 귀용은 철저한 자기 포기로 극도로 빈곤하고 무기력한 상태임을 확신할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풍덩 빠져든다고 합니다. 비굴하면서까지 집착하고 매달리는 나의 애굽이 갈대지팡이 허상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착하고 믿음 좋아 보였던 데다 제 힘으로 상상할 수 없는 성공을 하여 멋있는 두루마기를 입었기 때문에, 결혼 첫날부터 청소와 빨래만 하는 환경에서 인생이 슬프고 허무하고 해석이 안 되어 수 없이 자살과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집 5년 만에 제가 야망 때문에 공부하고, 결혼한 것을 깨닫게 되어 눈물로 회개했고, 그 때부터 두루마기를 빨며 교양을 배설물처럼 던지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순종으로 나가니 놀라운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 성 밖에 있는 자들은 복 있는 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 밖에서 다섯 가지 죄를 행하면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개들은 길 거리를 돌아다니며 온갖 더러운 것을 먹다가 토하고 나서 자기가 토한 것을 또 먹으려고 오는데, 자신의 죄와 그릇된 습관으로 고통 당하고 후회하면서도 이런 일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가도 위선을 좇고, 음욕을 품고, 미워하고, 자식, 돈 우상이 있어, 두루마기 빨지 않는 사람들은 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남편에게 돈을 주었다가 주식 하다 망하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옳으신 일이라고 울며 고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거짓말 하며 바람 피우다가 우리들교회 와서 목장에서 나누었는데, 이렇게 목장에서 다른 사람의 적용을 들으면서 내 두루마기를 빨 때 복 있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