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히 오리니]
계 22:6-12
계시록의 주제는 ‘내가 속히 오리니’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니 자꾸 신앙이 약화됩니다.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나?’하면서 믿는 자들을 조롱하지만, ‘속히 오리니’는 항상 지속적으로 다가 오고 있지만 아직 확정적으로 도착하지 않은 영적인 긴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속히 올 것 같으면서 안 오시는 것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고 사랑인데, 오늘 주님이 ‘속히 오리니’ 하시면서 몇 가지 당부를 우리에게 하십니다.
첫째, 신실하고 참된 말씀에 굳게 서라고 당부하십니다.
결코 속히 될 일은 신실하고 참된 말씀인데, 이 말은 믿을 말이고 또 믿어야 할 말이란 겁니다. 구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신약의 예언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계시록 당시 로마에 의해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귀로만 듣는 것이 답답할 수 있어서 하나님이 환상과 상징으로 힘을 주었는데, 이런 영화로운 체험은 사명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인데 체험에만 빠져 있고 환상에만 빠져 있으면 성화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환상을 보고 체험 신앙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보이는 것에 경배하고 싶기 때문에 천사가 위대한 환상과 계시를 보여 주니 저절로 엎드려지지만, 이 땅에서 경배의 대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이고 십자가는 세상 영광을 내려 놓는 것이기에 어렵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항상 원망을 하지 않고 내 죄를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전파하고 인봉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성경을 펴 놓으란 것인데 주야로 묵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오실 일이 가깝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항상 용서하라 하시는데 이것이 마지막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한편 성경은 보이면서도 감추어져 있고 감추면서도 보이는 책입니다. 다 알려져도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감추어진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전파하려면 인봉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인봉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즉, 말을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이야기나 한다고 말씀이 다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박한 나눔이라도 상대방을 감동 시키는 그런 나눔을 해야 말씀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넷째, 일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십니다.
일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종말이 올 때는 급박하게 와서 변할 틈이 없습니다. 출애굽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날 때 종착역이 천국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일한 대로 갚아주는 것이 무슨 상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되는 일이 없어 보이는 어떤 사건이 와도 기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거룩으로 인도하는 상이 됩니다.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으니 거룩한 자로 살기 위해 여전한 방식의 큐티와 기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와 나라와 모든 양육 받을 때 사단이 틈 타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