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8
김용의 선교사
별 감동 없이 맞이하는 우리들의 일상이 의미 있게 다가오면 그 동안 참 기막히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주일은 내 생애 가운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으니, 온 마음으로 진리 앞에 서면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시대마다, 국가에도,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위기의 시간이 올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보시는 위기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약 2,700년 전, 이스라엘의 근본을 흔들어 놓는 가장 큰 위기의 진단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시는 것이었는데, 주님은 거창한 예배의식이 아니고 주님을 향한 온 마음의 사랑을 원하신다고 하셨으며, 예수님이 계셨던 시대에도 누구도 이웃의 아픔에 대해 관심이 없는 문둥병 세대라고 위기를 진단하셨고, 칭찬받을 일을 많이 한 에배소 교회에 대해서도 ‘첫 사랑을 잃어 버렸다’며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중요시 여기는 위기는 인격의 본질에서 핵심인 마음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속는 것은 수많은 변명과 합리화로 자기만을 추구하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숨길 수 없는데,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남편, 부모, 자식 간에도 나 만을 찾고, 신앙 생활에서도 내게 유익한 하나님을 찾는 바로 나 자신인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라고 했던 바울처럼 진지하게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게 되면 내 안에 거룩함이 없고 원수가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때부터 진정한 복음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자관원처럼 우리는 세상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해요 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실해야 하고, 영혼을 팔아 장사하면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정확하게 듣도록 하며 회개하고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며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설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할 수 있으며, 교회는 주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저도 소망 없는 상황에서 자학하며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이 다가와 그날부터 하나님께 미쳐 살기 시작했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은 영원한 진리에 근거한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것인데,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전부가 되어 살아가는 삶,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최후의 질문은 이 순간에도 날 사랑하니 하고 베드로에게 물으시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만들어내신 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셨는데, 이 고백이 운명이 된 사람은 절대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끝까지 그 길을 가는 것이 사랑이며,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어 내십니다. 주님의 이 질문 앞에 우리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고백으로 주님이 나를 인도해 가시고, 주님의 영광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내 손에 꽉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온전히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