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께 속한 자]
계 14:1~5
훌륭하고 어질다는 제 이름처럼 어떤 좋은 이름을 주어도 그 이름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오직 어린 양께 속한 자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어린 양께 속한 자는 어떤 자인지 살펴봅니다.
첫째, 시온산을 바라보는 자, 거룩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전체 안에 동시에 일어난 소 계시록이 7개가 있어 연대기적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진짜 지혜로 구별해 내려면 동서남북으로 봐야 할 것이 있고, 그래서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선 것을 보게 된 겁니다. 은혜의 장소 시온산과 셀 수 없는 큰 무리 144,000명은 아무리 힘들어도 궁극적으로 한 명도 낙오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은 부자나 빈궁한 자나 짐승의 수에 눈이 어두워 일류가 되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으로 바닥을 보이게 하시고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인생에 들어온 것이 어린 양 이름이 이마에 써지기 시작한 것이며,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인 하나님의 이름이 써지고 믿으면 지나가버리는 것 없이 영원한 것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 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거룩을 바라보는 것이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갈등 충만한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둘째, 구속함의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 세상은 배울 수가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자들 입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는 성도가 승리하는 것 때문에 천사들이 환영하며 부르는 노래이며, 그래서 이 노래를 배울 자는 오직 구속함을 얻은 새로 창조된 무리들만 부를 수 있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워진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는 하늘 나라 언어이고 가치관입니다. 많은 물 소리와 뇌성, 거문고 소리 같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엄청난 진리를 전하니 권위가 있지만, 전해지는 나의 그릇은 아름답고 부드러워야지 다른 사람이 하늘나라 음성으로 들을 수가 있는 겁니다. 고난이 극심하지만 믿는 사람끼리 모여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울고 회개하는 공동체야말로 천상의 공동체와 같은 것입니다. 북한의 지하 교회에서 예배 중에 어떤 할머니가 기도하는 것을 들었는데, 로마보다 더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선 구속의 새 노래를 부르는 공동체가 아닌가 합니다.
셋째, 구별된 삶이 있는 자입니다.
어린 양께 속한 사람, 구원의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영육간에 정절을 지켜야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 따라가는 것은 자랑도 성공도 능력도 아니고 오직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초월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인생이 되며 리더십이 오는 겁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거짓말과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너무나 아파하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특별한 영웅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선각자 소양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 직전 마지막 소원이 숭늉이고 오이 무침이라고 했던 너무나 평범한 한 사람이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절대치의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겁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어린 양께 속하고 하나님께 위탁하면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