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증거]
계 11:7~11
우리를 위한 최고의 증거는 하나님이 아는 것만큼 증거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이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물어 보실 때, 베드로가 믿음도 없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했는데, 부족해도 이를 통해 베드로를 수제자 반열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최고의 인생을 위해서 최고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최고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첫째, 최고의 증거는 죽기까지 증거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인 저희가 1260일 동안의 증거를 마칠 때 짐승이 올라와 전쟁을 일으켜서 이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교회의 사명과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전해 놓은 후, 계시록 시대의 로마의 핍박과 같은 무저갱의 세력이 지옥에서 올라와서 교회를 쓰러뜨리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바울을 통해서 보듯이 순교가 처절한 패배인 것 같지만, 순교보다 훌륭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성도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충성은 인내입니다.
둘째, 죽기까지 증거하되 악한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는 증거를 해야 합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라 했지만, 멸망 전에는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합니다. 롯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살려주셨어도 안 돌아 오는데, 쾌락, 도박, 여자의 세계가 좋아서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이기고 이기려 하는 것에 이렇게 망함이 있는 겁니다. 자기가 어떤 주제인지는 가정을 통해 알게 되는데, 최고의 가정은 하나님만이 주인이라는 것과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이 선포되는 가정입니다. 이런 소돔과 애굽의 가치관에서 두 증인, 즉 성도는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하는 겁니다. 망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말고 나그네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며,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독을 뿜지 않은 표정을 하면 그 때 복음이 전해지는 겁니다.
셋째, 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때, 땅에 거한 자들의 조롱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증인이 가는 길은 대접과 환영 받는 길이 아닙니다. 내 문제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아야 하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은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이 너무 괴로운 겁니다. 진정한 성도로 사명을 받은 자라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회개의 말씀을 증거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해도 사흘 반이라고 합니다. 선포할수록 갈등 충만한 삶을 살지만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에 가장 악한 세상의 권력의 아래 두시는 겁니다. 최고의 증거는 죽기까지 십자가 증거를 하면서 있는대로 조롱을 받는 겁니다.
넷째,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사흘 반 만에 생기가 들어가고 자기 발로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성도가 당한 고난을 표현할 때는 짧게 느껴지는 사흘 반을 쓰고,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를 이야기할 때는 1260일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은 짧고 영광은 길다’고 말해주시는 겁니다. 마음의 상처의 치유는 영혼과 마음, 육신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하고, 교회는 ‘상처가 별이 되는’(scars into stars) 아름다운 반전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남편의 첩을 도와주는 적용으로 남편이 돌아와 은혜까지 끼친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에 혈기 안 부리는 것이 순교이며 최고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