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낄 때]
창 4:1-10
우리가 원래 살아야 할 곳은 에덴 동산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하나님에게 대항하고 대드는 에덴의 동쪽에 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부조리가 많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에덴 동편, 에덴 동산 밖의 삶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보여주는 최초의 이야기가 바로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가인이 하나님과 빚어낸 갈등의 이야기입니다. 형 가인은 밭의 곡식을 가지고 왔고, 동생 아벨은 가장 좋은 양 한 마리를 잡아서 왔는데, 둘 다 다 희생이 따르는 예배이고 기도였지만, 왠 일인지 하나님은 아벨의 희생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큐티하고, 신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을 때,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실망을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삶이 도랑에 처박힌 것처럼 비참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궁극적으로 우리의 길과는 다른 방식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관심사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실망했다라고 느껴졌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삶을 보면 ‘당신이 이렇게 해주면 나는 저렇게 해줄게요’라고 하며 협상 테이블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신앙과 영성의 문제도 별 반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드리고 열심히 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보상을 해줄 것이란 생각, 일종의 거래를 원합니다. 사탄도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하나님을 거래협상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당사자라고 생각하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응답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가인이 보인 반응은 분노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갔습니다. “왜 분노하니, 네가 잘했으면 어찌 너를 받지 않겠니” 하시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지금 분노를 통해 넘어지려 하는데, 죄의 갈망을 통제하고 지배해라 하십니다. 내가 하고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에 따라 보상하지 않으실 때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오늘 가인은 하나님이 싫어서 멀리 멀리 가려 하는데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할 때, 그 순간이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천만한 때입니다. 스스로에게 ‘하나님은 공평치 않아, 좋은 거래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가인처럼 수 많은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만, 사실상 가인의 갈등은 아벨과의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갈등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갈등에서 시작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실 때야 말로 우리 신앙의 본질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이고 ‘아다마’는 흙인데, 우리 모든 사람은 누구든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흙덩어리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끼거나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순간이 올 때 마다,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과 소망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신실하게 대해 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