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 받은 심판]
계 6:1-6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시작되는 심판의 재앙을 보게 됩니다. 인을 하나씩 뗄 때 마다 환란이 찾아 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가 돌아 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제 그 재앙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째,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심판입니다. 첫번째 재앙은 승리한 정복자의 출현입니다. 모든 면에서 이긴자의 모습, 모든 것이 완벽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외모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창세기를 보면 요셉의 역할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멋있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한 저주의 대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인생이 100% 죄인임을 보여 주는 것이 유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기고 또 이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합니다. 여기서부터 재앙이 시작됩니다. 칼의 노래를 불렀던 라멕처럼 이기는 것이 고통이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쁨이 없어집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마음 때문에 전쟁과 기근, 고통이 계속됩니다. 이기고 또 이긴 로마는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심판입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를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나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재앙의 근원인 것 입니다.
둘째, 화평이 제해지는 심판이 있습니다. 붉은 말 탄 자는 살육과 피와 기근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임무는 평화를 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10:34). 한 집안에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시적 외적 화평이 깨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되는 본질적 화평을 위해 깨어져야 할 화평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가족입니다. 믿음과 관계 없는 화평은 깨져야 할 화평입니다. 원수는 집안에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보다 예수님을 더 좋아하지 않으면 합당치 않습니다. 자기 부인이 없는 모임은 세상 모임입니다. 그 모임 때문에 화평이 깨집니다. 구원을 위한 내부 분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 화평을 제하고 영원한 화평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셋째, 기근의 심판이 있습니다. 화평이 제해지니 삭막해져서 기근이 오게 됩니다. 이해 타산적이 됩니다. 이기고 이기려 하다가 화평이 제해져서 기근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앙입니다. 견딜만한 고난을 주시고 우리에게 빨리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주님께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에 우뚝 서기 위해서 오는 고난입니다. 아직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있어서 말씀이 안 들립니다. 십자가가 먼저고 부활이 나중입니다. 아직도 돌아 오라고 여분의 식량을 주고 계십니다. 지금이라도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주신 기근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넷째, 어린 양만이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모든 심판은 주님이 시작하셨으니, 끝내실 이도 주님이십니다. 우리로 새로운 인생 되게 하신 것은 어린 양입니다. 우리에게 모두 다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꼭 필요한 것만을 주십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는 담대함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