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래]
계 5:8-14
1차원적인 감사는 남보다 더 부요할 때 감사하는 것이고, 2차원적 감사는 남이 못 되어서 감사한 것이며 3차원의 감사는 불행해도 안 되어도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에이몬스는 감사하는 마음은 스스로가 어떤 좋은 일에 수혜자가 되었음을 인식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사건의 본질로 인해 삶을 새롭게 깨달아서 이 감사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3차원적 감사를 하는 그런 새노래는 어떻게 부르는 것일까요?
첫째, 새노래를 부르려면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계시록은 어린 양의 심판과 구원이 주제입니다. 앞으로 시작될 재앙에서 기도와 새노래를 부르면 어린 양의 속죄 사역으로 누구든지 심판이 구원으로 바뀔 수 있는데 제일 중요한 기도는 금 대접에 쌓아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거룩한 기도가 새노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요한계시록 당시의 핍박을 본다면 고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0년간 노예생활을 한 애굽은 탈출했어도 로마는 살면서 변화시켰습니다. 장차 올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순간에 살면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그러지 말라고 기도의 비밀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객이 되고 나그네가 되어서 400년간 종노릇을 해야만 주님의 자녀가 되는데 나그네 인생을 제일 잘 가르쳐줄 사람이 바로 우리의 식구들입니다. 우리 속 썩이는 식구 때문에 여기와 있으니 천국에 가면 그들이 최고의 공로자입니다.
둘째, 그 새노래는 구원의 노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는 지혜와 능력과 찬송과 영광과 능력을 주시는 어린양 예수를 찬양하는 것인데, 죽임 당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 계속 찬양하고 있으면 모든 식구들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이고 나의 구원의 근거라는 고백을 앉으나 서나 하는 것이 새노래라는 것입니다. 천천, 만만인 천사들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뒤에서 찬양하고 있는데, 구원이라는 건 주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입니다. 계속 죽어지는 섬김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다른 사람들, 만물을, 우주를 구원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입니다. 역대상에 헤만이라는 찬양대장은 어려서부터 가증이 여김을 당하고 곤란을 당하는 고난의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노래를 부르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면 이 땅은 좁은 길이지만, 어디서나 새노래를 부를 때 모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셋째, 늘 새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리더십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하셨는데,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죄를 용서하시고 심판을 거둬달라고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섬기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역할을 감당하면 다스릴 수 있는 리더십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걸 갖추었던 라멕은 무자비한 칼의 노래를 불렀지만, 주님은 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죽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사모님은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며 항상 잘 믿고 있는 줄 착각하던 중에, 하나님이 남편의 외도라는 심판의 사건을 주셨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충격과 배신과 미움과 분노와 억울함으로 죽어가다가 공동체의 도움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새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이제 어린 양되신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구원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핍박은 있어야 될 일입니다. 구원의 새노래로 모든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