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분]
계 4:6-4:11
흉한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세상은 흉한소식 듣기를 너무 두려워하여 정신을 못 차리지만 나쁜 소식을 누구나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본문에서 사람을 뜻하는 ‘생물’을 통해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사람의 본분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생물과 하나님 사이에 궁창이 있어 가까이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하고 싶으셔서 번개와 뇌성과 같은 사건을 주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사건앞에서도 수정바다처럼 고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오히려 요동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악을 ‘바다’에 씻어내어 유리바다의 고요함으로 거룩하게 나와야 한다.
둘째, 사람의 본분은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장 5절과 미가서 6장 8에서 네 생물의 본분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라’ 라 했다. 결국 복음을 전할 때 사자처럼 용감하고 소처럼 인내하고 사람처럼 지혜롭고 독수리처럼 민첩하게 하여 균형잡힌 모습으로 성도로서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핍박으로 고난 중에 있지만 하늘 보좌를 바라봄으로 주눅들지 말고 담대하게 섬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내 인생이 해석되어서 내 사명을 깨달을 때 얼굴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아무리 잘 나갈 지라도 하나님 없으면 얼굴의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는 없다.
6절, 8절에 네 생물에 눈이 가득하고 각각 6날개가 달려있다고 했는데 이사야 6장 2절에 나오는 스랍의 모습도 날개가 여섯이 있어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있다고 했다. 자기 영광 취하지 말고 겸손하게 가라는 것이다. 눈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리고 있어도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기에 자기 얼굴에 책임도 지지만 가리고 가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통찰력을 주셔서 ‘~ 몰랐네!’ 가 줄어들게 된다. 하나님은 이미 보여 주셨는데 내 욕심과 믿음의 분량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안과 주위의 눈으로 통찰력이 생기게 되고 언젠가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넷째, 쉬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여섯 날개와 눈을 가지고 하는 찬양이 ‘하나님은 거룩하다’이다. 따라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를 외치고 가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교회 다니면서도 우상숭배하니 쉼이 없지만 구별되게 살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사람의 본분을 행하면 권능과 전능이 임하고 행복도 얻는 것이다. 웨스터민스트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겁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 1 목적이여야 한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목적이 되고 최고의 이타적인 일이라고 해도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것 정도인데 이것으로 인류 전체에 유익을 줄 수가 없다. 세상 사람은 믿는 사람을 자주성, 독립성이 결여된 사람이라 조롱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삶에서 하나님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사람의 본분은 자기 면류관을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최고의 면류관은 구원의 면류관인데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기에 주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게 되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아무 영광도 취할 수가 없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죄인인 자기의 실체를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할 때 사람의 본분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로마황제보다 더 높은 하늘보좌를 보여 주시면서 구원과 심판은 마땅히 될 일이니 고난 중에 잘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수종들고 가되 자기 면류관은 던지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