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다]
요한계시록 3:14-22
주님은 일곱 교회를 대상으로 영적 성장 서바이벌 경쟁시키고 계시는 듯합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실까요.
첫째, 너는 부자다 라고 평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통상 교통로 변에 위치하고, 은행이 발달한 부자 도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온천 많고, 검은 양털 카페트로 유명한 패션의 중심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안염제가 유명하여 도처에서 치료 받으러 올 정도 였습니다. 모두가 기근을 겪은 시절에도 자력 갱생할 정도로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에 예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신 주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진실된 자도 없고, 충성된 자도 없고, 창조주로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가득한 교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부자를 두 가지로 정의하십니다. 첫째, 미지근한 자입니다. 뜨겁고 찬 것은 그래도 교회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인데, 미지근한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지근한가요. 가진 게 많아서 은혜 못 깨닫기 때문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아무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역겨워서 토해 버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책망을 넘어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하십니다. 둘째,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부자 교회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곤고한 자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상태입니다. 천국에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교만이 굳어져서 지옥이 됩니다. 하나님이 초청해도 거절하는 데 인생을 보낸 사람들, 눈 멀고 벌거벗은 거지들로 구성된 교회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눅16:23에 보면 나사로 거지와 부자 얘기가 나옵니다. 나사로 거지와 부자가 죽었는데, 지옥에 있는 부자는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 한방울만 달라고 애원합니다. 우리가 한번 죽으면 천국 지옥이 바뀌지 않습니다. 부자는 땅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천국과 지옥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깨닫지 못하면 모두 헛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제일 확실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마음 두드리지 않으면 전도는 되지 않습니다. 거지인 나사로가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고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 믿고 낙심치 않고 지금을 족한 줄 알고 살아 가야 합니다.
둘째, ‘그는 부자다’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연단한 금, 흰 옷, 안약을 사야 한다고 하십니다. 먼저, 불로 연단한 금, 즉, 시련을 통해 굳건한 믿음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적용하고 들려 주는 자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둘째, 흰 옷을 사라고 하십니다. 거룩으로 가는 흰 옷은 육신의 수치를 내어 놓고 영적 수치를 가리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으로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 놓으면 영혼의 수치가 가리워 집니다. 셋째, 안약을 사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영적 소경이다 그러니 천국을 보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어두워진 눈은 썩은 것만 보입니다. 눈이 밝아지면 세상 것들이 무가치해지고 무가치하게 보였던 신령한 것이 보이게 됩니다.
셋째,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은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문밖에는 문 고리가 없습니다. 문을 여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회에서 길선주 목사님 설교가 바로 이 말씀이었는데, 제목이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내 쫓고 있다는 뜻입니다. 길 목사님은 자신의 친구가 죽으며 돈을 맡겼는데, 100달러를 훔쳤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으로 교회가 눈물 바다를 이루고, 성령 찾아 오셨습니다. 수치의 고백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오순절이라 불리 웁니다. 지금 우리도 주님을 내 쫓지 않나요. 회개하고 마음으로 모셔 드리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책망하시고, 회개하기를 호소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