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라] 계3:1-6 하나님은 실수와 죄악의 자리에서도 한 가지 잘한 일 있으면 상급을 주십니다. 자격과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긍정의 눈으로 대해 주시는 주님이 사데교회에 대해서는 인색하십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실까요. 첫째, 살았으나 죽은 교회가 사데교회 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죽은 시체같은 사데교회. 전략적 요충지로 수직 암벽 위에 세워진 사데 도시는 사금으로 말미암아 전설적인 부를 축적하여 사치, 부도덕, 방탕에 빠져있었습니다. 괴롭힘도 없고 핍박도 없는 형통한 교회처럼 보입니다.. 그 위에 예수를 믿으려니 예수가 나의 삶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잘 사는데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영적 교만이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둘째, 온전한 행위를 하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데 교회는 교회로서 갖출 것을 다 갖춘 교회입니다. 돈도 많고 누가 봐도 살아 있게 보일 만한 교회였습니다. 행위와 행동들로 유명해진 교회였습니다. 명성이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악이 다 나올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감격이 사라진 교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감격한 척, 은혜 받은 척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행위는 사라지고 교회에 어두움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중세 시대의 암흑시대가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님이 도적같이 나타나십니다. 수직 절벽위에 세워진 사데 도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치러 왔을 때 그도 어쩔 수 없어서 진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사데 병사 하나가 졸다가 투구를 떨어 뜨렸습니다. 그리고 몰래 비밀통로를 통해 주으러 왔을때 고레스 왕은 그 길로 따라가서 모두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난공불락이라도 잠을 자면 끝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졸면 함락당합니다. 영적 핍박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면 주님이 도적같이 오십니다. 천국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와 같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잘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리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신랑을 만나지 못합니다. 기름 준비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장에 참석해도 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죄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문을 열어 달라고만 떼습니다. 저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자신의 죄도 모르고 회개도 모릅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신랑 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넷째, 합당한 자들도 있다고 하십니다. 전체가 더럽고 깨끗한 자는 얼마 안됩니다. 죽은 교회 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흰 옷 입은 자 몇 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도움이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회개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바울도 그 죄로 인해 풍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합당한 자의 태도입니다. 죄는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 생각나는 것입니다.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큐티야말로 우리 인생을 가지치기하는 과정입니다. 남겨 두신 씨가 되는 길입니다. 다섯째, 이기는 자의 상급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의로운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구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집안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시인해야 주님도 우리를 시인하십니다. 붕어빵 장사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결을 물으니, 어제와 똑같은 붕어빵은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손님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더 좋은 빵을 구울까를 늘 생각한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건 목장을 하건 목자들이 늘 새롭게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 마음으로 남편, 아내, 자녀를 위해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