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계 1: 9-11
신학자 본회퍼가 형제 간의 죄 고백과 사죄의 선포에 대해 강조한 것을 보며, 우리들교회도 서로 죄를 고백하는 간증을 통해 진정한 형제됨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전대미문의 핍박 가운데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편지를 쓴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형제는 어떤 사람일까요?
형제는 동참하는 자입니다(9). 차별과 배척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세상 나라에서 사도 요한은 ‘형제’를 이야기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구원의 사랑은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나되게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기 위해 환란을 당하면서 우리는 영적 진실성의 결과인 인내에 동참하게 됩니다. 나의 환란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란입니까, 나의 죄로 인해 받는 환란입니까? 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아누스의 박해로 밧모섬에 갇혔지만 고난을 통해 형제됨을 고백했듯이, 내가 말씀을 보며 예수를 증거하며 나의 힘든 환경의 밧모에 잘 갇혀 있으면 나의 환란이 예수님의 환란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잘 갇혀 인내해야 할 나의 밧모는 어디입니까?
형제는 말씀이 나팔 소리로 들리는 자입니다(10). ‘주의 날에’ 말씀이 들리기에,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말씀이 들리는 비결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만나도 말씀으로 준비된 사람은 성경을 통해 내 인생을 해석하게 됩니다. 중력 때문에 대기권 밖으로 나가려면 너무나 힘들지만 일단 대기권을 벗어나면 무중력 상태가 되어 둥둥 떠다니게 되듯이, 힘들어도 말씀 때문에 내 환경에 순종하기로 하면, 옛 자아는 죽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체험하는 주의 날이 임하게 됩니다. 육적으로는 갇혀 있을지라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것이 될 것입니다.
형제는 사명을 받는 자입니다(11). 말씀을 깨닫는 자에게는 사명을 주시기 위해 단련해가십니다. 죽은 자 같은 사데교회, 발람의 교훈을 지켰던 버가모 교회, 우상숭배와 음란에 빠졌던 두아디라 교회,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책망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 등 일곱 교회의 특성이 모두 내 속에 있습니다. 날마다 큐티를 통해 내 속의 악을 보며 하나하나 적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실 것입니다. 내가 내 속의 일곱 교회의 악을 볼 때 다른 이들도 자신들 속의 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날마다 큐티하고, 목장 보고서를 쓰고, 이슬비 원고를 쓰는 모든 것들이 쌓여서 자녀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유언의 편지가 될 것입니다.
제가 유럽 코스타에 가서 만난 한 분은 천주교인이었는데도 은혜를 사모해서 우리들교회 홈페이지의 설교와 목장 보고서를 열심히 읽으시며 기독교로 개종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의 적용을 보며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는 형제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형제의 사랑으로 환란에 동참하는 사람을 보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렇듯 날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큐티와 적용, 간증을 사명으로 알고 하나하나 써 갈 때,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읽혀져서 다른 이들의 적용을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난과 수치가 반짝반짝 닦여져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