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나실인의 삶]
행18:18
올해 7월 27일, 전 세계 복음의 거장이었던 존 스토트 목사님이 90세의 나이로 타계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기도하며 심혈을 다해 쓴 그의 저작이 바로 <제자도>로, 원제는 'The Radical Disciple', 강한 제자, 전폭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는 제자, 죽도록 충성하는 제자 이런 뜻입니다.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표현보다는 이렇게 급진적이고, 강하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제자’ 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과 싸우는 전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해 부르실 때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것을 명령하시고, 후에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 극단적인 부르심이 바로 기독교의 시작입니다. 단순한 종교가 아닌 진리이기 때문에 생명을 걸지 않으면 가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겠다는 젊은이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믿음에 도전하셨고,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부자 청년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주고 나를 따르라고 도전하십니다. 얼핏 들으면 불가능한 요구 같지만 어부였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따를 가치 있는 분,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목숨을 걸고 따라갈 수 있는 위대한 천국 복음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도전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시리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겐그레아 항구에 도착해 머리를 깎습니다. 왜 머리를 깎았을까요? 나실인처럼 살기 위함입니다. 나실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 보다 적극적으로 래디컬하게 살기 위해 자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를 맞으며 정처가 없고, 파선하고 수많은 위험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일성수 하면 됐지” “십일조 감사헌금 드리면 됐지” 라면서 한계를 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해 하는 어떤 일도 우리에게는 희생이 아닙니다.
포도와 포도로 만든 모든 것을 입에 대지 않아야 하는 나실인의 삶은 세상 것으로 즐거움을 취하지 않는 삶입니다. 죄가 관영하고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명품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값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값인 것을 알 때에 세상 것으로 기쁨을 누리기를 거절하며 복의 근원으로 자랑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또한 나실인은 시체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을 모두 시체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싶지 않아도 죄를 짓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정신을 바로 차리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깎으면 안 되는데, 바울이 머리를 깎은 행동은 다시 시작하겠다는 새로운 헌신을 의미하기에, 저는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며 회개하게 됩니다. 유혹이 많은 이 세상을 이길 방법은 오직 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숱한 고난을 겪은 바울이 나실인으로 헌신한 것은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생명을 낳고 낳는 구원의 감격 때문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주님의 도전에 응답하며 세상과 싸우는 제자로서, 그 날을 꿈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행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