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창50: 15-21
위대한 족장 야곱의 죽음 이후 하나님 나라 12지파가 새롭게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내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용서는 받아야만 합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두려움이 오기 때문입니다(15).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들은 죄의식으로 불안해합니다. 유다가 생명을 내놓고 중재를 했지만 형들이 아직 자신들의 입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했다고는 해도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용서받지 못한 죄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형들에게 야곱은 ‘내 아버지’ 가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 로 자리잡고 있습니다(16). 우리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여야 하는데 하나님의 조카로, 양아들로 살면서 눈치를 보고 누리지 못합니다. 죄사함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받기 위해 내 고통과 직면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16-17). 용서하기 위해 고통을 내 것으로 획득하고 인정하며, 그 고통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연민인지 이름을 붙여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당한 일이 내 고통과 걸맞는지 평가해 보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내 삶의 결론이고, 내가 고치겠다고 하는 죄의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전령자를 보내어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철저하게 고백합니다. 직접 꿇어 엎드려 빌며, 자신들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용서는 해야만 합니다(17-19). 섣부른 용서, 내가 편하기 위해 하는 용서는 화해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에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요셉이나 형들이 똑같은 죄인이지만, 형들은 돈 앞에 작아진 가해자의 입장이었고 요셉은 돈과 권세가 있는 피해자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비굴하게 용서를 구하는 형들을 보며 형들 역시 피해자이고, 자신도 베냐민을 편애한 가해자임을 깨닫습니다. 서로가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피해자이기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용서의 종결자는 하나님이십니다(20-21).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나는 내 남편과 자녀, 가족을 용서할 수 없기에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데려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용서란 상대의 인격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을 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인간적으로 위로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의로우신 사건임을, 그래서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기억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시111:3-4). 또한 갈기갈기 찢어졌던 자신들의 가족사를 넘어서서 이제는 형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간곡하게 위로하며 형들의 마음을 찢었습니다. 징표가 따르는 참된 용서를 했습니다.
우리의 목장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나의 고통을 나누고 인정하며 평가하고 책임질 때 참된 용서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상처 속에서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건과 환경을 통해 간곡한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찢는 용서를 하는 참된 승리자가 됩니다. 이러한 용서의 과정을 통해 만민에게 구원을 베푸는 우리 각자가 되길 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