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랑]
창세기 48장 1-7절
모두가 사랑 때문에 울고 웃으며, 특별한 사랑을 하기 원하고 받기 원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특별한 사랑을 놓지 못하는 야곱을 보면서 참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특별한 사랑이란 특별 대우하는 사랑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야곱이 병이 들고, 요셉이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옵니다(1). 형제들은 부르지 않고 요셉 혼자 아들들을 데리고 야곱의 축복을 받으러 갔습니다. 야곱도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니 병든 중에도 힘을 내서 침상에 앉아 특별 대우해줍니다(2).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벧엘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땅과 후손의 축복을 해줍니다(3-4). 유다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갈 것을 알면서도 요셉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이 이르기를 바라는 것이 야곱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특별한 사랑은 파괴적인 사랑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서 떠나올 때 라헬이 이방신상 드라빔을 훔쳤는데, 야곱은 그것을 모른 채 ‘외삼촌의 신을 가진 자는 살지 못할 것(창31:32)’이라고 저주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라헬에게 죽음의 저주를 한 것입니다. 그 후 라헬이 에브랏 길에서 죽고, 자신의 저주로 라헬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그 소생 요셉과 베냐민도 특별히 편애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특별히 사랑했지만 라헬 때문에 일을 더하고 자식을 못 낳는다고 속이 상하고 자기도 모르게 죽음의 저주까지 하면서,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죽이는 파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랑은 죄책감의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합니다(5). 자식이 없던 라헬이 아들을 낳고 ‘아들을 더하기 원하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 요셉입니다. 라헬에게 죄책감을 가진 야곱이 요셉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서라도 라헬에게 아들을 더하며 보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애굽에서 낳은 아들은 이방 여인과의 소생이기 때문에 정통성을 위해서도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의 족보에 넣었습니다(6). 그러나 이후 유다 자손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지만 요셉 지파는 자취를 감춥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될 것이라고 했는데, 살인을 한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호전적인 지파가 되어서 남유다를 괴롭히는 북이스라엘의 원조가 됩니다.
마지막 고백을 통해서 특별한 사랑을 내려놓습니다. 야곱이 마지막 고백으로 라헬의 죽음을 말합니다(7). 왜 마지막 유언에서 라헬의 죽음을 이야기할까요? 창세기 35장,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벧엘로 가는 노중에 라헬은 에브랏 길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원문을 보면 라헬의 죽음은 ‘갑자기 죽다, 인하여 죽다’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라헬이 야곱 자신으로 ‘인하여’ 죽었다는 것을 요셉 앞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열조의 무덤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한 라헬의 안타까운 죽음을 말하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고백이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고 그 소생 요셉과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했지만, 그들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인생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자녀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해도 인간의 사랑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내 죄를 인정하는 마지막 고백으로 믿음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최선의 사랑입니다.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창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