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품으로
창세기 46장 8-34절
요리하는 엄마와 지혜로운 아빠, 예의바른 아이들, 그리고 어떤 위기도 극복해내는 가족의 모습이 TV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가족 구성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순기능 가정보다 그렇지 못한 역기능 가정이 훨씬 많습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그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환난 당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본처가 아닌 첩의 소생 ‘서얼’은 우리나라에서 철저한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적자건 서얼이건 남자건 여자건 차별이 없습니다. 야곱의 집 사람 모두가 애굽 총리가 보낸 수레에 타고 갑니다(8-27). 야곱은 편애와 차별이 심해서 라헬만 사랑하고 그 소생만 예뻐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편애, 강간, 살인, 통간의 사건이 끊이지 않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름도 많지만 나그네 되고, 부정하고, 도망가고…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믿음의 족보에 찬란히 올라가고 완전수인 70명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짧은 인생입니다. 애굽의 총리 요셉도 열두 아들의 한 아들로 올라갈 뿐입니다. 세상 지위와 영화보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애굽으로 들어갈 때는 70명이었지만 나올 때는 200만 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자연산술로는 계산이 안 되는 부흥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면 부흥하는 데에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사는 인생은 말씀대로 번성할 것입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중심 잡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애굽에서의 생계와 보존에 대한 책임은 요셉에게 있지만 야곱의 가족을 믿음의 땅 고센으로 인도하는 사람은 유다입니다(28).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가 죄를 회개한 뒤에는 모든 사람의 중재자가 됩니다. 죄 많은 유다가 구속사의 한 획을 긋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회개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신앙 상식을 초월합니다. 내 죄를 뼈아프게 보는 유다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족과 형제들이 서로 눈물로 입을 맞추며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습니다(29-30).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기 부인이 있는 사람, 날마다 회개함으로 생활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정착지가 중요합니다. 요셉이 총리로서 어디든 정하고 갈 수 있었지만 먼저 바로에게 알리고 기다립니다. 소를 신성시하는 애굽 사람들이 보기에 목축을 업으로 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증히 여기는 대상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천히 여길 것을 알면서도 목축이 업이라고 하면서 고센 땅을 택합니다(31-34). 애굽의 세속 문화를 피하고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기 위해서기 가증히 여기는 고센 땅이 최고의 정착지입니다. 세상이 가증히 여기는 곳,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정착지가 됩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모인 우리들교회에 자연산술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증히 여겨도, 그렇게 여김을 받기에 더 간절하게 아버지 품을 사모합니다. 건강한 교회, 믿음의 공동체를 정착지로 삼고 아버지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이 이러하니” - 창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