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창세기 45장 1-15절
진정한 용서를 하려면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먼저 화해하기 전에는 힘든 일입니다. 22년간 불신과 원망과 고통 속에 살았던 요셉과 형제들이 어떻게 화해를 하게 될까요?
생명 내놓는 사랑에 뜨겁게 반응합니다. 그동안 형제들의 비리를 감추려고 자제하던 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성대곡합니다(1-2). 요셉의 눈물로 모든 일이 애굽과 바로에게 오픈되고 치유와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요셉이 방성대곡을 한 것은 유다의 생명 내놓는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다(44:16)’고 한 유다의 회개와 베냐민을 대신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은(44:33) 책임지는 사랑이 요셉을 감동시키고 진정한 화해를 하게 됩니다.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다가 회개를 했어도 형제들은 죄수와 노예 입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요셉이 먼저 자신을 밝히고 능히 대답도 못하는 형들을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3-4). 가해자는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피해자가 화해의 열쇠를 가진 능력자입니다. ‘나는 요셉이라’는 말은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는 뜻을 가진 요셉의 이름에 합당한 행동을 하겠다는 영적인 고백입니다. 어머니 라헬이 요셉을 낳고도 다른 아들을 더 원하면서 붙인 이름이 요셉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만 편애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베냐민을 위해 유다가 생명 내놓는 것을 보면서 요셉도 자신의 욕심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클 때 은혜가 임합니다. 요셉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에서 죄를 깨달았기에 화해의 역할을 했습니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내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화해를 이루는 능력자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해서 육적인 일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구속사적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모든 일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한 일이기에 한탄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5-8).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악한 행위도 그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근심하고 한탄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통해 우리 집안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기에 원망이 없어집니다. 내가 아직 하나님을 못 만나고 하나님과 화해가 안 되었기에 사람과도 화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화해에는 책임이 수반됩니다. 내 돈이 나간다고 하면 차라리 화해를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진심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소유로 가족들을 봉양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총리이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으니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합니다(9-13).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속의 조상인 야곱이 애굽을 거부할까봐 아버지를 반복해서 부르며 모셔오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흘리는 요셉의 눈물이(14-15) 모든 것이 진실임을 보여줍니다. 회개할 때 눈물이 납니다. 회개의 눈물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내게 주신 지위와 권세와 부는 믿음의 지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피해자, 가해자를 떠나서 내가 먼저 다가가고 입을 맞추며 내 소유를 베푸는 것이 화해의 역할입니다.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창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