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
창44: 1-13
오늘의 본문은 관계회복의 마지막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항상 끊임없는 시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죄를 자백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환경으로 조여오시면서 요셉의 형제들을 다루십니다. 이 마지막 시험이 어떤 것이고, 형제들이 이것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말씀을 통해 봅니다.
마지막 시험은 발걸음도 가벼울 때 옵니다(1-3). 형제들이 모든 목적을 이루고 무사히 돌아가려는 때, 요셉은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숨깁니다. 형제들이 자백하지 못한 죄가 있기에 예비하지 못하고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마지막까지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요셉을 통해 형제들의 우애를 시험하며 수고하십니다. 무서운 시험과 같은 내 사건을 바라보며 이 사건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정의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 사회에 공정성과 정의라는 절대가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종교와 영성의 문제가 개인의 취향으로 전락하고, 세속주의에 근거해 상황과 관점에 따라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입니다. 그러나 정의에 가치중립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올바른 가치측정이 중요합니다. 요셉과 청지기가 이렇게 형제들을 시험하는 것이 세상적으로는 부당해 보이지만, 이것은 두 사람이 이스라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한 영이 되어 수행한 진정한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마지막 시험을 잘 볼 수 있기에, 우리는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배신을 경험하면서 나의 악을 생각해야 합니다(4-5). 하나님은 도둑으로 의심받은 형제들에게 계속해서 죄의 문제를 환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 문제로 듣지 못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할 형제들의 악을 결코 내버려두실 수 없는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기까지 이렇게 수고하십니다. 자꾸 가로막히는 사건이 오면 완전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배신의 감정을 넘어서서 우리 자신의 악을 발견해야 합니다.
형제들이 결백을 호소합니다(6-12). 일개 청지기에게 주라고 부르며 도둑으로 몰리는 비참한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땅끝까지 낮아져서 은잔이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가 죽을 것이며 다 종이 되겠다고 호소합니다. 은잔이 발견된 사람만 종이 되리라고 청지기가 이야기하는데, 그 은잔이 베냐민에게서 발견됩니다.
형제들이 공동의 책임을 지며 마지막 시험을 마무리합니다(13). 22년 전 요셉의 사건에는 무심하던 형제들이, 지금은 베냐민의 사건 앞에 모두가 옷을 찢는 변화의 모습을 보입니다. 아버지가 편애하는 베냐민을 넘겨주고 이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연대책임으로 여기며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오랜 고난과 기근, 시험을 통해서 형제들이 한 마음이 되고 다같이 죽겠다며 변화되었습니다. 이기적인 모습에서 이타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시민성은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옳고 그름의 상대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 절대가치의 문제입니다. 가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내가 죽어지는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아니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건이 마지막 시험이 되어, 이기적인 내가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절대가치를 가지고 가정과 교회, 나라를 지킬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매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창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