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잔치]
창43: 16-34
예수를 믿어도 이 땅에서 모두 천국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내 사건을 바라보는 나와 남의 시선이 모두 주님이 보시는 시선으로 바뀔 때 참 자유가 있는데 그러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총리 요셉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형제들처럼,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우리가 그 잔치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입니다(16-22). 형들이 요셉이 그렇게 원하던 베냐민을 데리고 요셉 앞에 섰음에도, 그가 베푸는 잔치를 함정이라고 오해하고 두려워합니다(16-18). 자신들이 요셉을 팔았던 죄 때문입니다. 다른 노력을 통해 유쾌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뿌리 깊은 죄를 하나님께 회개할 때 우리의 심령이 유쾌해집니다. 형들이 필사적인 변명을 하지만(19-22), 아직도 진정성 있는 사죄가 아닙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기가 너무나 어렵지만, 온전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가장 훌륭한 기술입니다. 형들에게 조금씩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이 들어가고 있지만(22), 아직도 천국 잔치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이 청지기입니다(16,23-24). 원죄를 씻음 받았지만 계속해서 회개할 자범죄가 있는 성도의 믿음을 견인하기 위해 청지기 역할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셉의 신실한 청지기가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인도하고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며, 특별히 형들이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으로 위로하고 해석해 줍니다. 우리도 가정과 목장,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회개하도록 도우며 천국 잔치로 인도하는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들이 여전히 노예처럼 행동합니다(25-28). 총리 요셉 앞에서 예물을 정돈하고 절하고 그 발 아래 엎드리지만, 이 모습은 성경적 가치관이 없는, 두려움으로 드리는 뇌물예배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요셉을 죽이려 했던 죄를 토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참된 토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낍니다. 인간이 100% 죄인이기에 내 죄의 정곡을 찌르는 토설을 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서 천국 잔치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붙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천국 잔치에 인도하십니다(27-34). 요셉이 한 부모에게서 난 혈육 베냐민을 귀히 여기지만, 이보다 귀한 인연은 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형제 된 보혈의 공동체입니다. 요셉이 베냐민과 형제들을 불붙는 사랑으로 사랑하지만, 오직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정을 억제하고 참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붙는 사랑으로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구원 때문에 지금 억제하고 인내하시며 수고하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요셉은 형들의 악을 선으로 갚으면서도, 베냐민에게 형제들보다 다섯 배를 더 주면서 형들의 반응을 시험하며 구원을 위해 오래 참고 검증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들을 사랑하면서, 자격 없는 형들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함께 누렸습니다.
55년간 온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병상의 마지막 순간에서 모든 식구들을 회개하고 예수 믿게 한 집사님의 큰오빠 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집마다 말이 안 되는 한 사람의 수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을 생각해봅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말고, 이제는 복음의 빚진 자가 되어 나를 위해 수고한 이들이 구원되도록 천국 잔치로 인도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택자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불붙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우하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에 감격해 이 천국 잔치를 잘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창4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