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물]
창43:11-16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구분짓기란 참 어렵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없던 시대는 없는데,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며 총리 요셉에게 드릴 예물을 함께 준비합니다. 야곱의 이 예물은 뇌물일까요, 선물일까요? 진정한 예물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봅니다.
뇌물이 무엇일까요?(11-12). 유다가 진정성 있는 설득으로 베냐민을 보내기 직전인데, 야곱은 조건반사적으로 이해타산적인 선물을 준비합니다. 머리가 좋은 야곱이 에서와의 만남에서도 예물을 철저하게 준비했듯이(창32장), 이번에도 가나안에서 나되 애굽에서는 귀한 물건들을 준비합니다. 거저 받은 정당하지 못한 재물은 돌려보내면서 뇌물 같지 않은 뇌물을 같이 보냄으로 총리 요셉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인간적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기에 선물이 아닌 뇌물입니다.
뇌물을 쓰는 이유는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존적 교만이 있어서 낮아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돈이 유용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에 뇌물을 씁니다. 저 역시 결혼 후 시집살이를 하면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두려워서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뇌물을 쓴 적이 있습니다. 뇌물은 두려워서 하는 것이고 선물은 감사해서 하는 것인데, 결국 그 뇌물 때문에 올무에 잡히게 되고 더 큰 두려움이 왔습니다. 그래서 망할 것 같아도 절대로 뇌물을 쓰면 안 됩니다.
진정한 예물을 드리려면, 아끼던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13). 야곱이 베냐민을 떠나라고 하는 이 모습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지는 적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치졸한 모습이어도 회개하며 가장 아끼던 자식을 내려놓을 때마다 하나님은 박수를 쳐 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을 부르게 됩니다(14). 야곱이 라헬과 요셉에 이어 마침내 마지막인 베냐민까지 보내고 나니 부를 이름이 없어져서 드디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길 바란다고 기도합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라” 고 고백할 때가 가정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입니다. 내가 끼고 돌던 자녀를 자발적으로 내려놓으면 그때서야 자녀가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려놓았기에, 객관적으로 또렷이 보게 되는 상을 주시고 예배를 회복시켜주시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해 주시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뇌물이 선물로 변합니다(15-16). 야곱 한 사람이 변하니 아들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워졌습니다. 나 한 사람이 변하면 온 가족이 자유로워집니다. 애굽 총리 요셉이 바라는 최고의 예물은 다른 것 아닌 동생 베냐민 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려놓고 애굽으로 보냈을 때, 비로소 베냐민은 최고의 예물이 되었고, 요셉이 그를 보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16).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내려놓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우리를 위해 천국의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과거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형들의 회개가 있어야 하고, 내가 축복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족의 구원을 원한다는 정곡을 찌르는 유다의 설득이 있어야 하며, 나 자신,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정곡을 찌르는 예물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키워주십니다. 나 한 사람 변하는 진정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저와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4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