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설득]
창43: 1 ~ 14
데이비드 봄은 대화의 목적을 ‘당신의 의견을 앞에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 이라 정의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려면 기다리고 참아야 할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상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설득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상대방의 한계를 정확히 꿰뚫어야 합니다(1-2). 아들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떨어지자 드디어 야곱이 양식을 조금 사 오라고 명령합니다. 양보라곤 몰랐던 야곱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설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근이라는 한계상황을 통해 야곱을 설득해 가십니다. 부를 이름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줘야 합니다. 한계에 부딪친 약자의 자존심을 어떻게 살려줄 수 있을까요? 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2-3). 구속사를 깨달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 유다가 하나님의 지혜로 야곱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② 상대방에게도 유익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4).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진실된 설득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③ 결정권이 상대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5).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는 것이 전적으로 아버지 야곱에게 달렸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에 시키면 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면서도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④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돕는 지체를 만들어야 합니다(6-7). 야곱이 이 한계 상황에서도 아우가 있다는 말을 왜 했냐며 어리석은 결과론적 추궁을 합니다. 그 때 유다는 입을 다물고, 형제들이 유다의 지체가 되어 거들어줍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유다에게는 형제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8). 앞서 르우벤은 실패를 전제로 설득했지만, 유다의 설득은 모두가 살리라는 호소력 있는 설득이었습니다.
상대방의 가치관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8-10). 유다는 요셉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겠다고, 평생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 형제와 골육의 구원을 원한다고 고백했듯이(롬9:3), 확실한 구원을 경험한 유다가 자기 자신은 이 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도 좋다는 자기희생적, 구속사적 설득을 합니다. 평생 축복에 집착하며 살아온, 부족해도 영적 가치관을 가졌던 야곱이었기에 이 유다의 말에 설득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상대방이 육적인지, 정신적인지, 영적인지 그의 가치관을 꿰뚫어보고 그것에 맞추어 전도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합니다. 죄인인 나의 주제와 분수를 아는 것이 때와 할 말을 분별하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상대의 가치관에 용기있게 도전해야 합니다(10-14). 유다는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고 야곱에게 단호하게 도전합니다. 기술을 배워서 설득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코드에 맞춰서 설득해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설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야곱 가정에 일어난 이 문제는 양식보다는 가정의 문제, 즉 영적 기근입니다. 음란과 편애와 차별로 온 영적 기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에,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유일한 해결입니다. 하나님의 설득에 설복되어 중독을 내려놓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배우자, 자녀, 동료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의 설득을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창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