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한 대답]
창41: 1 ~ 16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한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창세기 39-40장의 힘든 환경에서도 범사에 형통했던 요셉이 41장에서 비로소 감옥에서 나와 바로의 앞에 섭니다. 육적으로 열린 환경에서도, 요셉은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합니다. 어떻게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평안한 대답은 가장 어려운 시험 가운데 하게 됩니다(1-7). 영웅은 보통 사람들보다 5분을 더 버티는 사람이고, 그 5분이 운명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요셉의 2년이 바로 그 5분이었습니다. 2년을 잘 견딘 후, 총리로 세워지기 위한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바로지만, 그가 꾼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꿈은 요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 주변에 믿지 않는 이들이 나 대신 예수 꿈을 꾸어 주고 괴로운 사건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반복적으로 꿈을 꾸게 하시지만 바로가 이 꿈을 깨닫지 못합니다.
권세와 지위, 학식으로는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8). 모든 권세를 가진 바로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내신 문제는 풀지 못합니다. 흔히들 우리의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예측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과 지식이 탁월해도, 세상 지혜로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리셔야만 해석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솔직한 고백으로 자신을 천거해주는 지체 때문에 할 수가 있습니다(9-13). 술 맡은 관원장이 지체였던 요셉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바로에게 요셉을 추천합니다. 자신이 한때 감옥에 갇혔고 거기서 만난 요셉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말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허물을 드러냄으로 모두를 살리게 되었습니다. 차별 없이 모인 공동체의 고백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기의 죄를 진실하게 고백할 때, 나와 가정, 공동체가 살아나고, 참 평안한 대답을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평안한 대답은 각인에게 해석해주는 것입니다(12). 요셉이 떡 관원에게는 죽음을 예언해 회개할 기회를 주고, 술 관원에게는 복직을 예언했습니다. 해석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각인이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해 주는 해석이 평안한 답입니다. 무조건 잘 될 거라는 해석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사건도 구원 때문에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14). 세상 사람인 바로가 급하게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옥에서 불러냅니다. 급히 부르는 대답에 신속히 응하기 위해 하루를 천년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마지막까지 잘 기다렸어도 아직 깎을 수염과 갈아입을 옷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해 주기 위해 애굽의 전통에 맞추어 수염을 자르고 옷을 갈아입으며 상대에 맞춘 경건을 갖춥니다. 끝까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평안한 대답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15-16). 나의 죄와 부족함을 말씀을 통해 깨달을 때 만물을 해석하고 만물의 마음을 붙들 수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은혜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해 답답하고 분하다면, 아직 하나님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기에 평안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결정적 한 마디가 최고의 평안한 대답입니다. 저와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가 진실로 평안한 대답의 주인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41: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