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자의 자격
창40: 8~23
어떤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저에게 2012년에 남북간에 전쟁이 나고 북한이 승리한다는 예언을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오셨습니다.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의 꿈 해석보다도 더 어려운 질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이야기이기에, 축복과 고난의 메시지를 알맞게 맞추어 균형 잡힌 삶을 살게끔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해석하는 것이지 인간의 지식과 학력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우리나라, 가정, 직장의 상황을 해석하는 해석자의 자격을 주실까요?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사람입니다(8). 요셉이 즉각적으로 꿈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고 답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평소 꿈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꿈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믿었기에, 가망 없는 환경 속에서도 요셉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온전히 담고 있는 성경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직통계시는 위험합니다. 구속사는 균형잡힌 삶이 전제되어야 하고, 내 인생을 특정 구절이 아닌 성경의 스토리로 읽어가야 합니다.
당시의 문화를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9-19). 요셉이 당시 고대 근동에서 전문가들이 고증한 꿈 해몽서를 접한 적이 없지만 그 방법을 따라 해몽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그가 처한 시대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시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내가 가진 약재료를 간증하며 상대방을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문화적 배경과 눈높이, 관심 분야를 맞추어 그들의 인생을 해석해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14). 요셉이 술 관원과 떡 관원의 앞날은 정확히 맞추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언제 나갈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명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삶으로 경험한 것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될 때 해석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서두에 언급한 예언과 같이 남북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악과 음란으로 영적 불감증에 걸린 남한보다도 극한 고난을 겪고 있는 북한 땅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과연 어디를 돌아보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직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이기에(행1:7) 우리는 주님의 권한을 뛰어넘는 예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나건 안 나건, 말씀의 가치관으로 애통하고 기도하며 매일의 생활예배를 잘 드리기로 이 상황을 해석해야 합니다.
상처를 해결한 자에게 해석자의 자격을 주십니다(15). 술 맡은 관원에게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청하면서, 요셉은 형들의 과실을 늘어놓지 않고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직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해결했습니다. 피해의식 때문에 남에게 베풀지도, 베풂을 받지도 못하는 사람은 남들의 문제를 해석해줄 수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잘못을 그에게서 도려내어 그를 재창조할 때 나의 과거까지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직통계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우리의 가치관을 세워가며, 시대와 문화를 수용하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상처를 해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해석자의 자격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며 살아나는 우리의 가정과 직장, 사회, 남북의 관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