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형통
창39: 6b-23
하나님께서 요셉을 축복하셔서 형통하게 하셨지만 준수하고 아담한 외모로 인해(6) 불 같은 시련을 겪는 모습을 보며 외모가 잘난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모든 환경 가운데 끈질기게 적용함으로 범사에 형통하는 요셉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요셉은 유혹 가운데 형통합니다(7-9). G20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졌지만 동성애로 몸살을 앓고 있듯이, 초강대국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사치와 향락이 만연해 있었기에 그 부인이 청년 요셉을 유혹합니다. 성적 유혹 중에도 동성애처럼 심각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들과 인권단체가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치료받지 않으면 영육의 파멸로 갈 수밖에 없는 질병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동침 요청에 신앙적으로, 양심적으로 대처합니다. 유혹의 짜릿함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않을 것을 결단했습니다. 우리의 어떤 중독보다도 더 예배를 사모하게 될 때, 내 죄를 보며 중독을 저절로 끊게 될 것을 믿습니다.
끈질긴 유혹 가운데 형통합니다(10). 힘이 있는 보디발의 아내가 노예 신분의 요셉을 끊임없이 유혹했지만, 요셉은 함께 있지 않음으로 대처합니다. 유혹받지 않으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게 아니라, 보지도, 가지도, 함께 있지도 않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차단하면서 혼전순결, 불륜, 동성애의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적용하면 잠시는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수천 배의 축복을 주십니다.
죄 지을 환경이 만들어져도 형통합니다(11-13).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죄짓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유혹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를, 외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요셉이 남들의 오해를 감수하고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려두고 이 정욕의 문제에서 피하고 도망했습니다.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재산과 체면이 아까워도 버려야 합니다. 요셉이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에 대해 민감했기에, 좋은 해석을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끈질긴 적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요셉이 축복 아닌 모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이 모함에서도 형통합니다(13-23). 보디발이 요셉을 믿었기에 그를 파렴치범으로 대우하지 않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보내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요셉은 그 감옥에 가서도 열심히 섬김으로 형통을 누리고, 훗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감옥에서 바로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며 감사함으로 여호와의 궁정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형통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 힘으로는 형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끊임없이 적용하고 가게 하시면서 우리를 형통케 하십니다. 내가 100% 죄인임을 알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걸어갈 때 어떤 환란과 핍박, 유혹 중에도 범사에 형통케 하십니다. 남편이 하루 만에 천국으로 간 사건을 제가 날마다 간증하는 것은 그 육적 죽음을 통해서 진정한 영적 형통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자녀들의 입시를 몇 년이나 치르게 하셨고, 취직과 결혼, 영적 후사의 문제에서도 끝없이 적용하고 갈 환경을 주고 계십니다. 남들 눈에는 어떠할지라도 오직 100% 옳으신 하나님을 믿으며 좋은 해석을 함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교회 공동체 역시 유혹과 죄 지을 환경, 모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적용함으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