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형통
창39: 1-6
오늘 본문은 요셉을 지칭하는 말이 17번이나 나옴으로서 요셉의 형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형통’ 이란 모든 장애물을 넘고 해결하여 앞길이 열린다는 의미인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은 어떠한 형통일까요?
요셉의 형통은 이끌리는 형통입니다(1-3).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요셉이 형들의 계략대로 이스마엘에게 이끌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애매한 고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미안한 마음으로 축복을 얼마나 쏟아부어주시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바로 요셉입니다. 열일곱 살 소년 요셉 인생 최대의 배신이자 절망의 이 사건을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시105:17)” 라고 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바로 하나님께 이끌려 간 것이고 주님이 허락하신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죽기보다 싫고 종살이 같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이끌려 간 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지경이 넓어집니다. 요셉이 한결같이 하나님을 붙잡았기에 믿지 않는 이방인 보디발 역시 요셉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억지로 이끌려 온 것 같은 교회와 목장, 양육 프로그램이 여러분 인생 최대의 형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섬기는 형통을 주십니다(4-5). 요셉이 보디발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목숨을 바쳐 충성했습니다.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은혜를 입고 섬길 때 생색나는 섬김이 아닌 권위 있는 섬김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에 성실히 일하고 주님을 간증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우리는 복의 전달자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천하 만민에 구원의 복을 주셨듯이, 요셉도 최악의 불공정한 환경에서 자기 인생을 해석하고 은혜로 섬기며 주인까지 복을 받게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차이>라는 책에서는 ‘운’ 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하는데, 흔히들 운은 타고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행운은 일과 사람을 통해서 찾아온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남을 위해서 하며 기꺼이 욕을 먹는 것이 행운의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행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나다움’ 과 ‘만족’ 을 찾아내는 ‘좋은 해석’이라고 합니다. 내 주제를 알고 “너는 나보다 옳도다” 라고 고백하는 좋은 해석이 바로 행운의 최고봉입니다.
청지기로서의 형통을 주십니다(4-6). 종에게는 소유권, 관리권이 없지만 청지기에게는 관리권이 있습니다. 주인의 살림을 관리하며 애굽 귀족생활을 배운 요셉이 훗날 나라의 살림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맡기신 것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맡기실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만세 전부터 요셉을 여러 모로 예비하시고 불운의 역할을 맡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억울하게 고난당했더라도 요셉의 모델을 보며 순종할 때 하나님이 축복을 부어주실 것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신 고난이기에, 하나님을 방향으로 놓고 갈 때 범사에 형통케 하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좋은 해석을 함으로 나와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을 받고, 토지까지 복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