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38:12-30
“당신이 나보다 옳아”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석될 것인데, 우리가 100% 죄인이기에 이 말을 하질 못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유다가 어떻게 이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 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가 옳다”에서 시작됩니다(12). 유다가 아들들 죽음의 책임을 며느리에게 전가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아내도 데려가시고 부자 장인과의 끈도 떨어지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아둘람 사람 히라와 여전히 교제하는 유다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가족 신화와 살인, 강간, 근친상간의 가족 비밀에 꽁꽁 매여 있기에 일중독으로 자신을 감춥니다. 유다를 비롯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애굽으로 이주시켜 400년간 노예생활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유다는 열등감 때문에 “내가 옳다” 만 부르짖습니다.
결국 결정적 악을 행하게 됩니다(13-24). 슬픔을 일로 잊으려던 유다는 신전 창기와 매춘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이 창녀는 영적 후사를 잇기 위해 나선 다말의 변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신실해 보이던 유다였지만 음란과 쾌락에 빠지고, 그 결과 죄의 흔적이 남아 다말이 잉태하게 됩니다. 자신이 다말을 창녀로 여겨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어놓고, 나중에 그것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니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또 책임을 전가하고, 행음한 며느리를 죽이라고 합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일지라도 타인을 정죄하고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이런 모습이 성경 곳곳,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야 합니다.
이 땅의 문제 해결책은 “너는 나보다 옳다” 는 고백입니다(25-26). 다말이 끌려가면서 자신이 영적 기업을 잇고자 했음을 보여주자, 유다가 마침내 자기 죄를 보게 됩니다. 다말이 창녀로 변장해 자신을 속이고 임신한 일이 자기 자신의 잘못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너무나 의로움을 깨달았습니다. 유다가 공동체 앞에서 자신이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죄를 고백하고, 이 집안에 예수 씨가 오게 하는 수치를 감당한 다말의 의를 높여주었습니다. “나는 문제없어” 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나의 단점과 상처를 예수님께 토스하며 그리스도와 공동체 앞에 정직하게 드러낼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내가 내 죄 때문에 애통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으면, 어느 새 내가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주게 됩니다. 다말이 수치를 무릅쓰고 구원의 일을 함으로, 유다가 자기 죄를 깨닫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그럴 때 온 집안이 살아나게 됩니다(27-30). “당신은 나보다 옳다” 는 말만 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며 우리의 모든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믿음이 없고 잘난 척 하는 타인을 보면서도 “내가 저 사람을 아직 배려하지 못하는구나, 네가 나보다 옳다” 고 말하는 것이 “너는 나보다 옳도다” 의 의입니다. 다말이 온갖 수치 끝에 쌍둥이 아들을 낳고, 베레스가 차자임에도 장자 셀라를 터치고 먼저 나옴으로 약한 자로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말의 이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칭찬하시며(룻4:12) 베레스의 세계를 다윗과 예수님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또한 유다의 고백을 알아본 아버지 야곱은 유다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축복하고 세상을 떠납니다(창49장). 온 집안에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는 놀라운 축복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수치와 찌질함을 다말처럼 오픈하는 우리들교회의 공동체 나눔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의 고백으로 모두가 살아나는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3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