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창38: 1-11
우리와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에, 사람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하나님 보시기엔 악하고, 사람이 보기엔 찌질해 보이는데 하나님 보시기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창 37장에서 요셉이 팔려간 이후, 38장에서는 유다의 이야기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은 요셉이지만, 유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셨기에 그 가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같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했던 유다의 집안은 어떤 모습일까요?
공동체를 떠나는 악으로 시작됩니다(1). 요셉을 팔아넘긴 유다는 죄책감과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환멸로 형제들에게서 떠납니다. 가나안의 대표적인 우상숭배지 아둘람으로 내려가서 훌륭하고 반석 같은 친구 히라를 만나지만 이것은 영적 타락의 시작입니다. 아무리 상처를 주고받는 공동체라도 그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참된 사랑을 배워가는 것인데, 유다는 이런 영적 여정이 싫었기에 세상으로 떠납니다.
불신결혼을 하게 됩니다(2). 유다가 가나안 부자 수아의 딸과 인격적 관계가 아닌 정욕적인 불신결혼을 합니다. 믿음의 선조들과 아버지 야곱이 불신결혼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불신결혼을 함으로서 믿음의 순수한 혈통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을 때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고, 솔로몬이 천명의 비빈을 보았을 때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된 것처럼 불신결혼은 신앙의 타락을 가져옵니다.
문제아가 나옵니다(3-10). 돈 많은 장인 보고 불신결혼을 했는데 아들을 셋이나 낳았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잘 되는 것 같지만 곧 자녀들의 문제가 터집니다. ①성적으로 방종합니다(7). 가나안의 음란한 우상숭배 행위를 본받은 장자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청년의 때에 정욕을 주의하고 순결의 습관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인격적으로 배워가며 결단할 공동체가 없었기에 중독을 끊지 못하고 죽임당합니다. ②극도의 이기주의로 돈 밖에 모릅니다(8-10). 둘째아들 오난은 계대혼인법에 의해 형수 다말에게 자녀를 낳아 줄 의무가 있지만, 극도의 이기심과 재물 욕심으로 잠자리를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수태를 방해합니다. 돈만 생각하고 신의와 의무를 버리며 형수 다말을 창녀처럼 대우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도 죽이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다말에게만 책임을 전가합니다(11). 두 아들이 죽고 난 후 셋째 아들을 다말에게 주지 않고 수절하라고 쫓아냅니다. 자신이 신앙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해서 죽음당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 다말만 탓합니다. 팔려간 요셉보다 팔아버린 자신이 훨씬 고통스러운 처지인데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가족 비밀과 가족 신화로 문제를 은폐하고 있는 유다이기에, 세상적으로 화려한 아둘람 히라와의 관계에서는 어떤 올바른 판단도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인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가 있는 찌질한 공동체라도 붙어 있음으로 오픈하고 건강해져야 하는데 “너 때문이야” 만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격 없는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내 행함과 잘남으로는 결코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내 죄와 형편없음을 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은혜의 족보가 열립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가 “나 때문이야” 고백하며 예수 믿기만 하면 우리 집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함으로 상한 마음의 제사를 드리게 되고, 여호와의 목전에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저와 우리들 공동체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창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