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 새]
창 34:13-31
성공하는 사람들은 화내는 방법도 다르다고 합니다. 화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화가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건강하게 화를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냄새입니다. 바울도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고후 2:14)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냄새가 될 수 있을까요?
신자의 사망의 냄새가 있습니다.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찾아온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받으면 주겠노라고 거짓말합니다(13-17). 디나가 강간당한 것을 듣고 화가 났지만 그 화를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수동공격적인 분노로,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간교한 술책에 능했던 야곱의 소행이 아들들에게까지 그대로 답습되고 있습니다. 할례받고 누워있는 세겜과 모든 남자들을 잔인하게 죽인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24-29). 신자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펄펄 나고 있습니다. 디나를 구한다고 너무나 의로운 것 같았던 그들의 잘못된 공동체 의식은 후에 형제인 요셉을 죽이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유혹해 염병에 걸리게 했을 때 비느하스가 범죄한 남녀를 칼로 죽인 것은 자기 분노대로 죽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민 25). 나의 동기가 분노일 때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불신자의 생명의 냄새같은 사망의 냄새가 있습니다. 속임에 능한 야곱의 아들들에 비해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그 말을 좋게 여기면서 할례를 받겠다고 하며 백성들을 설득합니다(18-22). 여전히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세겜은 ‘그 일 행하기를 지체치 아니하였’을 정도로 정욕에 눈이 멀어있고, 육체의 고통이 따르는 할례를 너무나 우습게 여기고,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23). 세겜이 한량없이 착해 보이지만 이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기 민족을 이용한 것입니다. 성문을 출입하는 남자들도 존귀한 지도자의 말을 듣고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24).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가 망하는 이유는 나의 욕심 때문이며 나를 욕심에서 이끌어낼 리더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이끌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 돕고 살릴 수 있기에, 자신을 이끄는 힘이 리더십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더디 가도 말씀 보는 훈련이 필요하며, 우리는 생명의 냄새 같은 사람들에게서 사망의 냄새를 분별해 내야 합니다.
올바른 냄새를 나타내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체험 신앙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들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여전히 형편없는 찌질한 모습을 보입니다(30). 악취를 낸 것은 아들들이 아니고 자신이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때 생명의 냄새가 나는 것인데 자신의 예배가 회복되지 않아 사망의 냄새가 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야곱은 딸의 강간과 가나안의 통혼 때문에 애통해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생명과 명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오랜 시간 후에 이 시므온과 레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저주하고 죽었습니다(창 49). 잘난 것이 하나도 없는 야곱이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일 뿐입니다. 나를 냄새로 삼아주신 것이 감사할 뿐, 악취냐 향기냐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향기로, 악취로 맡는 것은 맡는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 씨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생명의 냄새고, 아무리 멋있어도 예수가 없으면 사망의 냄새인 것을 알고 날마다 분별하며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