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
창33:12-20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어도 믿는 사람보다 더 훌륭해” 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행위가 의롭고 인격적이라 해도 ‘나의 하나님’ 을 부르짖지 못한다면 그들은 유사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하나님’ 을 부르짖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봅니다.
야곱과 에서는 가는 길이 다릅니다(12,16). 야곱과 아름다운 화해를 한 에서는 야곱에게 400명의 군사로 그를 호위하는 동행을 제안합니다(12). 20년만에 돌아온 낯선 가나안 길을 에서가 도와준다면 힘이 되겠지만, 세일로 회정하는 에서는 구속사와는 관계가 없는 유사 그리스도인이기에 함께 가지 않아야 합니다. 거듭남의 증거가 없는 사랑은 결국 한계가 있기에,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알아보는 영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에서가 너무나 훌륭해 보이지만 에서는 결국 ‘너의 하나님’을 부르는 자이기에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능력과 권세로 유혹해도 불신자와는 아니라는 것, 아무리 믿는 사람보다 훌륭하더라도 불신자에게 소망이 없음을 야곱이 깨달았습니다. 길이 다른데도 너무나 환상적이라며 합리화하는 결혼, 동업, 교제는 없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거절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13-15). 야곱이 연약한 자녀와 가축을 돌보아야 하는 이타적인 이유를 설명하고(13-14), 자신이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와 동행하고 있기에 형이 자기를 돕지 않는 것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부드럽고 단호한 거절을 합니다(15). 거절에 명분이 없다면 솔직한 것이 최고입니다. 언제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분별하게 하시려고 야곱에게 홀로됨의 시간을 주시며 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합니다(17). 최종 목적지는 벧엘인데도 에서가 떠나자마자 자기를 위해 숙곳에 집을 짓습니다. 저 역시 남편이 가고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자 큐티모임과 피아노 연주 두 가지를 다 하려 했습니다. 야곱도 시험이 끝나자 자기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가 가장 큰 위기입니다. 야곱이 아직도 이렇게 연약합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자에게 확실한 소망을 붙잡게 하십니다(18-20). 숙곳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겜 성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해 달라는 야곱의 기도를 하나님이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창28:21).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야곱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소망을 위한 대가로 은 일백 개를 주고 땅을 삽니다. 저 역시 큐티모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주님을 만나는 것을 보며 피아노 연주를 내려놓았습니다. 큐티사역에 시간과 공간, 애정을 드리며 저의 은 일백개로 값을 치루며 확실한 소망이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 나의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20). 나의 하나님을 부르며 묻자와 가로되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갈길을 알려 주시며 인도해가십니다. 확실한 소망을 붙잡게 하십니다.
매튜 미드는 성도는 지옥 가장자리까지 던져진다 해도 결코 지옥에 갈 수 없고, 위선자는 천국 입구까지 들어올려진다 해도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성도는 최악의 경우에도 신자이지만, 위선자는 최선의 경우에도 결국은 불신자입니다. 야곱이 기가 막힌 은혜 가운데서도 욕심으로 자기를 위해 집을 짓는 연약하고 치졸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택자이기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으로 부르짖듯이, 부족해도 나를 영접해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유사 그리스도인을 분별하며, 오직 “나의 하나님” 을 부르짖는 저와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창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