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한 후 15년]
왕하 14:12~22
여러분, 1997년에 있었던 역사적인 대결을 기억하시나요? 체스의 황제 카스팔 로프와 IBM 인공지능 딥블루의 대결이었는데, 카스팔 로프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는 인공지능에 패배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받았고 경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당시의 패배를 인정하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력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임을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볼 아마샤도 화를 자취하여 큰 패배를 당합니다. 그 패배 이후 15년 동안 수치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아마샤는 화를 자취하여 북이스라엘을 치러 나갑니다. 그는 요아스가 싸움을 거절했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진행하여 패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다가 이스라엘에 패했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신적 수동태로 하나님이 유다를 치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유다의 패배는 에돔의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리고 열왕기 기자는 아마샤를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는 예후에게 처형이 되었고 아버지는 심복에게 살해되었는데, 이 모든 심판이 고조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집 딸인 아달랴와 불신 결혼시킨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사로잡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가장 큰 문인 에브라임 문을 제일 먼저 부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이지만 장자 취급을 받은 지파로 북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중심지파였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이 문을 헐어버린 것은 '유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안 돼! 너희는 너희가 만든 이 문처럼 부서져야 해!'라는 메시지로 유다 백성에게 엄청난 수치였을 것입니다. 이 패배는 단순히 북이스라엘에게 당한 억울한 일이 아니라 100% 옳으신 하나님의 가장 합당한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사 계보를 이어 가시기 위해 유다를 훨씬 엄하게 다루십니다. 죄 가운데 술술 풀리는 삶은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우리 실체를 직면하여 돌이키라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패배를 당할 때 너무 힘들고 절망이 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결정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둘째, 15년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본문 15-16절은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일생을 정리하며 두 번이나 업적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양육을 받았고, 아마샤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양육을 받고 업적이 있었던 요아스가 먼저 죽고, 업적이 없는 아마샤는 그 뒤로도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일찍 죽고 오래 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육이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마샤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요? 자신의 회개 없는 정직을 깨닫고 복수심과 교만을 돌아보며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은혜로 여기지 않으니, 성경은 그가 살아서 숨만 쉬었다, 살아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무리 큰 승리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고, 큰 패배라도 구원으로 이어지면 패배가 아닙니다. 패배의 시간은 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15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마샤의 최후는 자기 백성이었던 사람들의 반역으로 끝나는데,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무리가 그를 반역하여 그가 도망한 라기스에서 죽입니다(대하25:27). 아마샤가 피해야 할 곳, 돌아가야 할 곳은 라기스 요새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패배의 사건으로 아마샤를 징계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15년의 시간을 주셨는데, 그는 여호와께 돌아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완악함에 대한 심판으로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100%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어떤 사건에서도 나의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아마샤를 반역한 무리는 그 시체를 예루살렘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하고 그의 어린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언약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고 다윗과 같지 않아도 예수님이 오시는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은 남은 15년의 인생을 회개하신다는 초원님이셨던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초원님은 지금 치리를 받고 계시는데, 장인어른의 임종 면회를 위해 그동안 게을리했던 큐티를 하셨습니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그날 말씀을 통해 치리 후 목사님과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말씀을 멀리 한 완악한 유다 백성 같은 죄인이었음을 회개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개는 늦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장인어른도 아셨는지 회개 메일을 주고받은 다음 날, '나도 예수 믿을 테니 김 서방도 회개하라'는 최고의 믿음의 유산을 주시고 소천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담임목사님과 공동체에서 물 긷고 장작 패는 느디님처럼 순종하며 갈 것을 결단하셨습니다. 패한 15년 후 이렇게 회개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패배는 사랑의 징계입니다. 패한 후 15년 동안 회개하시며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나의 업적을 생각하기보다 양육을 잘 받는 것이 자녀들에게 나누어줄 가장 큰 업적이 되는 줄 믿습니다.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사시는 성도님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