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화를 자취하느냐]
왕하 14:1~11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달고 맛있는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합니다. 이것을 정서적인 폭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기 파괴 증후군의 일환으로 그 순간은 좋지만 결국 화를 자취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아마샤 왕도 멈추어야 하는 데서 멈추지 못하고 화를 자취합니다. 오늘은 화를 자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회개 없는 정직 때문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남유다로 성전을 수리했던 요아스 왕의 아들 아마샤의 이야기입니다. 아마샤는 믿음의 어머니 덕분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지 않았다고 하는데, 남유다가 성전이 생긴 뒤에도 편리성 때문에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들에게 산당은 너무 익숙한 일상이어서 악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웠습니다. 평범 속에서 저질러지는 악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는데, 유다 왕들에게는 이 산당이 그랬습니다. 아마샤 입장에서는 조상과 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행한 대로는 다 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죄와 타협하는 것이 화를 자취하는 시작이 됩니다. 다윗의 길은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입니다. 정직과 회개의 차이는 큽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줄 최고의 유산은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 산당 예배를 드리면서 정직하게 행했다는 것이 화를 자취하는 길입니다. 회개가 안 되는 사람은 생색이 납니다. 하나님이 제거하라고 하시는 산당이라면 제거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과 타협하며 산당 제사의 죄를 끊지 않으면 결국 화를 자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복수심보다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아마샤는 집권 초기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함으로 왕권을 굳게 했지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여호야다를 따르지 않고 아버지를 죽인 심복들에게 원수를 갚았습니다. 아마샤는 왕으로서 충분히 심복을 죽일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아람에게 성물을 보내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결론이구나! 심복들이 옳도다!'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구속사인데, 정직하다고 외치면서 모조리 원수 갚는 것에 골몰하는 것이 정직의 한계입니다.
본문 7절에 아마샤가 에돔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로 바꿉니다.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이 유다 여호람 왕 때 유다를 배반하고 독립하였는데, 아마샤가 처음으로 에돔정벌에 나선 것입니다. 그는 에돔정벌을 위해 남유다에서 군대 삼십만 명을 동원하고 북이스라엘에서 돈을 주고 용병 십만 명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니 용병 십만 명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아마샤는 큰 손해를 감수하고 말씀대로 돌려보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정직인데 이 순종으로 에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만 명을 죽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유다 자손이 또 다른 만 명을 사로잡아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몸이 부서지게 하였습니다(대하25:12).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활활 타는 분노로 에돔 사람들을 부숴버린 것입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화를 자초하지 않고 승리하려면 복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네가 감히' 하는 교만을 그쳐야 합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북이스라엘 용병 십만 명을 돌려보냈을 때, 일자리를 잃은 용병들은 성읍을 약탈하고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아마샤는 이 일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대면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며 '네가 에돔에게 이겨서 마음이 교만해졌구나! 왜 화를 자취해!' 하며 정곡을 찌릅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듣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국경 요새인 벧세메스로 출정합니다. 다음 주에 보겠지만 이 전쟁은 아마샤의 대패로 끝납니다. 아마샤의 가장 큰 문제는 듣지 않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에돔 정벌 후 그들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며 분향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5:14). 하나님은 그래서 유다를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남유다는 산당이 너무 익숙해 악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고 우상 숭배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마샤와 유다 백성 전체가 눈이 멀고 귀가 막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며 자기 생각에 갇혀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네가 감히!' 하며 귀를 막고 화를 자취하여 멸망으로 내려갑니다. 당신이 옳습니다!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합니다. 여러분, 목장에서 지체들의 좋은 말 힘든 말 듣는 것이 교만한 우리의 귀를 열리게 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다윗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SG 초원님의 나눔입니다. 아들이 나에게 너무 대들어서 며칠 큐티를 하면서 내 죄를 보고 아들한테 사과했습니다. '아빠는 서자라 아버지한테 대들 생각조차 못 했는데, 아빠한테 대드는 거 보니까 내 아들이 맞구나. 대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부터 아들은 화가 나 대들려 할 때 꾹 삼킵니다. 초원 모임에서 이렇게 아들 나눔을 하시며 '하나님께서 내 언어를 다듬어주셨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회개의 죄고백이 자녀를 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은 루게릭 와이프를 십 년이나 간호하고 계시고, 아들은 저렇게 대들고 큰 딸은 시집 못 가고 있지만, 그래서 목장 인도를 너무 잘하십니다.
여러분, 화를 자취하는 것은 회개가 없는 정직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를 자취하지 않으려면 복수심보다 말씀을 따르고, '네가 감히'하는 교만을 그쳐야 합니다. 화를 자취하는 것이 내 삶의 결론인 것을 알고, 회개가 있는 정직으로 복수보다 말씀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도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 하시며 '네가 감히!'하는 교만을 그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