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화해]
창33:1-11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뽑은 ‘10대 명 사과’를 보며 사과란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느꼈습니다. 그 중 가장 어려운 것은 가족 간의 사과와 화해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형 에서와 20년간의 묵은 불화를 풀고 아름다운 화해를 이룹니다. 아름다운 화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려움에서 믿음의 시선으로 바뀌어야 합니다(1-3). 절뚝이며 걷던 야곱이 눈을 들어 그간 그의 영원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에서를 바라봅니다(1). 환도뼈가 부러지고 나니 야곱이 체험신앙이 되어 하나님을 만났고, 두려움의 시선이 믿음의 시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야곱이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에서에게 나아가는 순서를 여종-레아-라헬과 그 자녀 순으로 차별해 배열합니다(2).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 보고 들은 것이 있었기에 자아가 무너지고 나니 하나님의 군대가 힘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처자를 내려놓고 그들 앞에서 에서에게로 나아갑니다(3).
겸손의 눈물을 서로 흘릴 때 아름다운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3-4). 야곱이 죽음에 이르는 겸손으로 에서에게 절을 하며 나아갑니다. 에서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했습니다(3).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죄가 말소된다고 착각하지만, 죄책감을 씻어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수치가 없어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 죄를 고백해야 하기에 야곱이 이렇게 변화되어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에서가 감동하여 서로 끌어안고 울었습니다(4). 아름다운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은혜를 느낄 때 아름다운 화해를 하게 됩니다(5-7). 창세기 전체에 17번 나온 은혜라는 말 중 일곱 번이 야곱과 에서의 화해에 쓰였습니다. 가족간의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은혜를 고백하자 하나님은 여종-레아-라헬 순으로 에서 앞에 나아와 절하게 하십니다(6-7). 내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가족 신화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그들이 주님을 만나기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 신화는 없습니다. 가정 안에 있는 피해의식으로 가득찬 사람, 비위 맞추는 사람을 어떻게 무조건적으로 품어줄 수 있겠습니까? 가족 신화에 집착하고 있다면 결코 아름다운 화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기에, 내가 공동체를 귀히 여기고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힘든 가족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같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8-11). 아름다운 화해에는 물질이 따라가야 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볼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본 듯이 최선을 다해 예물을 받기를 강권하고 드렸습니다. 언약과 상관없는 형일지라도 감동을 주고 화해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내 죄를 볼 때 화해할 수 없는 사람과도 화해를 하게 됩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의 책에서, 한 부인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옮긴 동성애자 남편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그를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자기 권을 포기하고 그를 용서한 것이 그를 향한 최고의 헌신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가족의 신화에서 벗어난 참된 사랑과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 신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내 가족 때문에 애끓는 대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시간과 마음과 재물을 드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내 가족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부부 간, 식구 간, 교회 간, 기업 간, 나라 간에 전쟁이 소문이 들리는 이 때, 우리도 그 전쟁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화해를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창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