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지 아니하면]
창32:26 호12:1-14
환도뼈가 위골된 야곱이 하나님께 매달려 축복을 받았다는 지난 주 설교를 들은 한 분이, 그간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었지만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씨름해서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고 나눔한 것을 읽었습니다. ‘축복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가지 않게 하겠다는 이런 야곱과 같은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창32장 26절과 호세아서 12장의 말씀을 통해 살펴봅니다.
야곱의 떼 부리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져 주신 것입니다(26). 환도뼈가 위골된 야곱이 영적 축복도 구했지만 그 속에는 인간적인 기복도 있었습니다. B.C.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 직전인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인 호세아서 12장은 ‘야곱의 소행’ 이라는 표현으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훈계하십니다. 형의 발뒤꿈치를 잡은 것, 환도뼈가 위골된 후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간구한 것이 그 두 가지 벌 받을 소행입니다(호12:3-4). 울고불고 하는 게 다가 아닙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보내드려야 하는데 야곱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붙잡았기에 하나님이 져 주셨을 뿐입니다. 이것을 축복의 모델로 삼아 모든 살림을 내팽개치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100일 기도하며 반드시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떼 부려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야곱의 소행이 이스라엘에까지 이어집니다(호12:1-14). 여로보암 2세 때 부강했던 북이스라엘의 거짓 저울은 우생학적 지식으로 얼룩지고 검은 양을 품삯으로 사취했던 야곱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유한 그의 후손들은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여러 선지자를 보내 경계하셨음에도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7-11).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람을 섬기고 양을 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 죽자사자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12).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했기에 하나님은 그들로 앗수르에 멸망하는 수치를 겪게 하셨습니다(1,14). 야곱이 세상을 좋아했기에 그 후손들도 똑같이 세상 좋아하다가 망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인생이 아닌,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과 겨뤄 이겨야 직성이 풀리던 야곱의 소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날마다 초청하십니다.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탕한 창기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하시고, 내 백성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자가 아닌 문제아를 낳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멸망 직전의 선지자 호세아에게 이런 고난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죄를 짓는 창기 고멜이 이스라엘 백성이고, 욕심 많은 야곱이고, 바로 우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택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끝까지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소행을 기억하셔서 몇천년 후에 이렇게 말씀하시듯이, 내가 예수 믿어서 회개만 하면 다가 아니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인애와 공의를 지켜야 합니다(5-6). 내 사건이 잘 풀리고 행복하고 성공하는 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나를 진실히 대하시는 주님이 주신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습니다. 나무 멍에를 버리면 쇠 멍에가 옵니다. 우리에게 주신 역할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소행이 100% 옳지는 못해도 표리부동한 부모가 아니라 진실한 부모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나의 환경의 멍에를 지고 갈 때 자녀들에게 수천 대의 축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며, 말씀으로 환경을 해석함으로 참된 축복을 누리는 저와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